2018년 6월 14일 목요일

16 소이비도 제2권 올가미





올가미



유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비통하게 말을 꺼냈다.

"내일...내일 자네가 떠나는데 그런데도 난....."

초류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냉막하게 말했다.

"두번 다시 날 배웅하지 마십시오. 나는 남을 배웅해 주는 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남이 날 배웅해 주는 것도 싫어합니다. 더구나 나는 남이 나를 배웅할 때의 그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구토를 할 것만 같습니다."

초류빈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빙긋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더구나 이번에 가는 곳은 그리 멀지 않으니 아마 사오 일 정도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맞았네. 내 이번에 자네가 돌아오면 꼭 마중을 나가겠네. 그때 우리 다시 맘껏 마셔 보세." 호유성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한 음성이 유유히 말을 받았다.

"당신은 그가 한 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거죠?" 책망어린 음성과 함께 설벽운이 천천히 몸을 나타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창백하고 전날보다 더욱 수척해진 것 같았다.

초류빈은 그 말을 듣자 고통의 빛을 떠올렸으나 즉시 껄껄 웃었다.

"내가 어째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오? 당신들은 모두 나의 좋은 친구들인데....." 설벽운은 싸늘하게 초류빈의 말을 가로챘다.

"누가 당신의 친구라는 거죠? 이곳엔 당신의 친구는 하나도 없어요." 이어 그녀는 갑자기 호유성을 가리켰다.

"당신은 이 사람이 당신의 친구인 줄 아나요? 이 사람이 만약 당신의 친구라면 이미 당신을 풀어 주었을 거예요." 호유성은 창백하게 얼굴이 변해 의식적으로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설벽운은 다시 차갑게 소리쳤다.

"그가 가지 않은 것은 당신까지 끼여들까 봐 그랬던 거예요. 그런데도 당신은 어째서 그를 놔주지 않는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가고 안 가는 것은 그의 일이지만 놔주고 안 놔주는 것은 당신의 일이잖아요?"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두번 다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호유성은 갑자기 무슨 커다란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몸을 바로 세우더니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가 가든 안 가든 나는 풀어 주어야만 한다."

"아하하하...하하하....." 그때 초류빈이 크게 웃어대었다.

호유성은 흠칫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니, 자네 왜...왜 웃는 것인가?" 초류빈은 경멸에 찬 어조로 외쳤다.

"형님은 언제부터 여인의 말에 따르기로 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호유성은 호쾌한 남아지 여인네를 무서워하는 그런 가련한 인간은 아닙니다." 호유성은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동생, 자네는 나를 너무 좋게 대하는군. 나 역시 자네의 고심을 모르는 바가 아니네. 그러나...그러나 만약 이렇게 되면 난 일생 X 동안 자네에게 어떻게 보답을 하라는 말인가?" 초류빈은 입술을 깨물고 한마디 뱉어냈다.

"난 다만 형님께 한 가지 일을 부탁하고 싶소." 호유성은 그 말을 듣자 금방 안색을 밝게 바꾸며 그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인지 서슴지 말고 말해 보게."

"어제 이곳에 왔던 낭천이라는 그 젊은 청년을 형님께선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물론 기억하고 있네."

"그에게 만약 무슨 위험이 닥치면 형님께서 그를 도와주십시오." 호유성은 이 뜻밖의 말에 전신의 맥이 다 빠지는 듯 그의 어깨에서 천천히 손을 내렸다.

"자네는 이런 촉박한 시기에도 그의 일에 대해서만 걱정을 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는 건가?" 초류빈은 그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조급한 듯 다그쳤다.

"승낙하시겠습니까? 안하시겠습니까?"

"내 당연히 승낙하겠네. 하지만 어쩌면 두번 다시 그를 보지 못할지도 모르네." 호유성은 크게 한숨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류빈은 그만 대경실색을 했다.

"아니! 그렇다면 그가 이미....."

호유성은 간신히 웃음을 꺼내며 대꾸했다.

"난 어제 그가 가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온다는 말인가?" 초류빈은 시선을 돌리며 거칠게 호흡했다.

"물론 나도 그가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다시 올 것입니다."

"그가 만약 자네를 구하러 왔다면 어째서 아직까지 오지 않는 건가?" 호유성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나무라듯 다시 이었다.

"현제, 자네는 남에 대하여 의리를 산처럼 귀중하게 여기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네."

"그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모두 그의 일입니다. 형님, 이후 언제 어디서 그를 만나더라도 그가 나의 친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알겠네. 자네의 친구라면 바로 또한 나의 친구일세." 그때 갑자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나리, 호나리....." 호유성은 그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앉았다.

"현제, 자네는....." 초류빈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내 일은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니 형님께선 마음놓고 가 보십시오. 그러나 내일 아침엔 절대 나를 배웅하러 오지 마십시오."

호유성은 천천히 방을 걸어나가다가 일단 문 밖을 나서자 발길이 갑자기 빨라졌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나무 아래에서 전칠이 호유성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호유성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나직이 입을 떼었다.

"득수했는가?" 전칠은 애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못했습니다." 순간 호유성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무엇이라고? 아니, 자네들 몇 사람에다 심미 대사와 철적 선생까지 합세를 했는데 그 한 놈을 잡지 못했다는 말인가?" 전칠은 쓰디쓰게 웃었다.

"그놈 정말 무섭더군요. 조노대가 그에게 당했을 뿐만 아니라 철적 선생까지도 그의 검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호유성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내 벌써부터 그놈이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넨 철적 선생이 꼭 그를 없앨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았는가?"

"그는 비록 도망을 갔지만 심미 대사의 일장에 맞았습니다." 호유성은 주위를 휘둘러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가 상처를 입었다면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텐데 너희는 어째서 그의 뒤를 쫓지 않은 것이냐?"

"소림사의 승려들이 이미 쫓아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특별히 통지를 하러 온 것입니다."

"그럼 내가 가볼 테니 자네는 사람을 시켜 이곳을 지키라고 하게." 마당 한가운데 높이 쌓아둔 나무 뒤엔 산이 하나 있었다.

호유성과 전칠 두 사람이 떠나고 나자 산 뒤에서 한 인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나타난 사람의 아름다운 두 눈동자에는 경악과 의혹이 가득 충만되어 있었고 비애와 분노로 차 있었다. 설벽운은 온몸을 떨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세상에는 갖가지 죄악도 많지만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친구를 파는 도적, 그것이 바로 그녀의 남편인 것이다.

설벽운의 마음은 유리조각처럼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렸다.

설벽운은 약하게 울며 마치 커다란 결심을 내린 사람처럼 초류빈이 갇혀 있는 집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나 그때 일진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와 설벽운은 즉시 산 뒤에 다시 몸을 숨겼다.

전칠이 이때 칠팔 명의 경장대한들을 데리고 와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누구든지 이곳의 출입을 금하라. 만약 불응할 시는 죽여도 무방하다."

전칠은 낭천을 잡으러 가는 것인 듯 말을 끝내기 무섭게 앞으로 달려갔다. 뒤에 남은 대한들은 무기를 쥐고 즉시 초류빈이 들어 있는 집 앞에서 삼엄한 경계를 폈다. 엄중한 경비는 그야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설벽운은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설벽운은 이제야 자신이 어째서 무공을 경시하고 무학을 연마하지 않았던가 하고 후회를 했다.

설벽운은 본래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은 결코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들은 그녀로 하여금 무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아." 아무런 힘도 없는 설벽운으로서는 이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으음!" 그때 가벼운 기침소리가 들려오더니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나타난 사람의 발걸음은 일정하지 못했으나 매우 빨랐다.

설벽운은 이 사람이 오늘 초빙되어 온 철적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철적 선생은 집 앞에서 소리쳤다.

"초가 놈이 바로 이 집 안에 있느냐?" 대한들은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이구동성으로 대꾸했다.

"저희들은 모릅니다."

"좋다. 비켜라! 내가 들어가 보겠다!" 체격이 우람한 한 대한이 앞으로 나서며 그의 앞을 막았다.

"전칠 나리께서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철적 선생은 크게 노하여 험악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전칠? 전칠이 대체 무엇이냐? 너희들은 내가 누구인지나 알고 있느냐?" 그 대한은 철적 선생의 옷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튼 누구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

바로 이때, 갑자기 철적 선생의 손이 허공으로 쳐들어지는가 싶었는데 공기를 가르는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수십 갈래의 한성이 앞으로 폭사되었다.

한편 초류빈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이때 초류빈은 문득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 비명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고 또 매우 짧았다.

그는 이때, 일종의 예리한 암기에 의해 목구멍을 정통으로 맞으면 비명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문득 뇌리에 떠올렸다. 사실 이런 상황을 그는 수백 번 접해 온 대전경험에 의해 잘 알고 있었다.

초류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혹 나를 구하러 온 것이나 아닐까.....'

곧이어 초류빈은 철적을 지닌 한 금포인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금포인의 야윈 얼굴엔 혈기라곤 한 점도 없었지만 살기가 가득차 있었다.

초류빈의 눈이 철적에 떨어졌다.

"철적 선생이 아니오?" 철적 선생은 초류빈의 얼굴을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남에게 혈도를 제압당했느냐?"

"내 앞에 술을 두고서도 마시지 않는 것을 보면 모르오?" 초류빈은 빙긋이 웃으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철적 선생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싸늘하게 내뱉었다.

"네게 이미 저항할 힘이 떨어졌으므로 널 죽이지 않는 것이 정당한 일이겠지만 난 어쩔 수 없이 널 죽여야겠다." 초류빈은 그 소리에 움찔했다.

"뭣이?" 철적 선생은 작은 두 눈으로 초류빈의 얼굴을 훑어보며 말을 꺼냈다.

"넌 어째서 내가 꼭 너를 죽여야 하는 까닭을 묻지 않느냐?" 초류빈은 바보스럽게 히죽 웃었다.

"내가 만약 묻는다면 더욱 당신의 화만 돋굴 것이고 또 당신에게 해명을 해보았자 믿기는커녕 그래도 날 죽이려고 할 텐데 무엇 때문에 쓸데없이 말을 꺼내겠소?" 철적 선생은 가볍게 놀라 얼굴을 붉히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렇다! 네가 무엇이라 하든 난 꼭 널 죽이고 말 것이다!" 이어 철적 선생의 얼굴에 극심한 고통의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크게 탄식을 내뿜는 것이었다.

"여의, 당신은 매우 비참하게 죽었소. 이제 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당신의 원한을 갚고야 말겠소." 철적 선생은 말하며 천천히 철적을 들어올렸다.

초류빈은 그것을 보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여의, 만약 당신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분명히 대경실색을 하고 말 것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나를 몰라볼 것이고 나 또한 당신을 모르기 때문이오." 초류빈의 말, 그것은 그가 매화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철적 선생은 그의 말뜻을 간파하지 못하고 당장에 손을 쓸 기세였다.

이때 갑자기 설벽운이 뛰어들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잠깐, 할 말이 있어요!" 철적 선생은 움찔하며 급히 몸을 돌렸다.

"부인...바로 부인이셨구려. 부인, 가능한 한 나를 막지 마시오. 아니,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오!"

순간 설벽운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물론 저는 막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이곳은 저의 집이니 살인을 하려면 최소한 제게 양해를 구하셔야 해요."

철적 선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그쳐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당신도 그를 죽이려 한다는 말이오? 어째서 그렇소?"

설벽운은 짐짓 표정을 원독에 가득차게 변화시키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가 저 자를 죽이려는 이유는 당신보다 더욱 커요. 당신은 고작 아내를 위해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나는 아들의 복수예요. 내게는...내게는 그 애 하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에겐 부인이 그 여자 하나뿐이 아니잖아요?"

철적 선생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설벽운과 초류빈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다면 부인이 먼저 출수를 한 후에 내가 출수를 하겠소."

철적 선생은 자신의 철적이 가히 번개와 같아 제아무리 뒤에 손을 쓴다 하여도 설벽운의 공격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했다. 그런데 설벽운이 초류빈의 앞으로 다가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몸을 돌려 철적 선생의 가슴팍으로 일장을 격출해 내는 것이 아닌가.

설벽운의 무공은 비록 높지 않았지만 결코 약한 여인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 일장은 그녀가 전력을 다해 쳐낸 것인 까닭에 철적 선생은 피할 틈도 없이 그 일장을 맞고 주르르 밀려나 벽에 심하게 부딪쳤다.

철적 선생은 또 본래부터 막중한 상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암기로 초류빈을 죽이려 마음먹고 있었다.

철적 선생은 그 일장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선혈을 뿜어내며 기절을 하고 말았다.

설벽운 역시 머리가 아찔해 오는 것을 느끼고 그 자리에 쓰러질 뻔하였다.

초류빈은 여태까지 그녀가 개미새끼 한 마리 죽여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출수를 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자 몹시 당황하였다.

초류빈은 이 당황스러움이 기쁜 것인지 무엇인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초류빈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또 어째서 왔소?"

설벽운은 길게 몇 번이나 숨을 내뿜더니 겨우 몸을 가누었다.

"나는...당신을 풀어 주려고 왔어요."

초류빈은 탄식을 하며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도 내 뜻을 모른다는 말이오? 나는 한 번 안 간다면 절대로 안 가는 사람이오."

설벽운은 가늘게 입술을 떨며 괴로운 듯 말을 이었다.

"그래요. 저는 당신이 호유성 때문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는...그는....."

설벽운은 갑자기 몸을 떨더니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설벽운은 이런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주먹을 힘껏 쥐어 긴 손톱을 살 속으로 깊이 박아 넣었다.

설벽운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질을 치며 울부짖었다.

"그는 처음부터 당신을 속였어요. 그는 본래부터 그들과 한패란 말이에요!"

이 울부짖음이 끝나자 그녀는 옆에 있는 탁상 위에 풀썩 엎드렸다. 만약 탁상이 옆에 없었더라면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초류빈이 이 말을 들으면 분명 크게 놀랄 것으로 짐작하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초류빈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을 뿐 아니라 눈 하나 깜빡거리지도 않고 오히려 웃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부인은 아마도 그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구려. 그가 어찌 나를 속이겠소?"

이때 설벽운이 상을 힘껏 잡아당기자 상 위에 있던 잔들이 모두 떨어졌다.

그녀는 몹시 애처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아니에요. 나는 눈으로 직접 보았고 또 친히 들었어요."

"아마도 부인이 잘못 보았을 거요."

설벽운은 고개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당신은 아직도 제 말을 믿지 못하겠어요?"

초류빈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달래듯 말했다.

"부인, 요 며칠 신경을 쓰다 보니 피곤하여 잘못 보았을 거요. 자, 가서 푹 쉬도록 하시오. 내일쯤이면 아마 부인께서도 당신의 남편이 얼마나 믿음직한 사람인가를 알게 될 거요."

설벽운은 너무나 평온한 초류빈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상 위에 엎어져 목놓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초류빈은 두 눈을 감으며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보지 못했다.

"아...아...당신은 어째서 사람이 그처럼....."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입에서 붉은 선혈을 토해내었다. 설벽운은 드디어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십여 년 동안 억제해 온 감정이 화산이 폭발하듯 모두 터져나왔다.

사랑...그것이 다 무엇이라는 말인가. 설벽운의 두 눈에서 뜨거운 피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설벽운은 비틀거리며 초류빈을 향해 다가갔다.

"가세요. 당신이 정 가지 않겠다면 나는 당신이 보는 이 자리에서 죽고 말겠어요."

초류빈은 마음이 떨렸으나 이를 악물고 한마디 한마디 냉혹하게 뱉어내었다.

"당신이 죽든 살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설벽운은 고개를 번쩍 쳐들고 초류빈을 놀라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아니, 당신...당신은....."

설벽운은 한걸음 한걸음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때 갑자기 설벽운의 등 뒤에서 따뜻한 감촉이 부딪쳐왔다.

어느 새 등 뒤에는 호유성이 와 서 있었다. 호유성의 표정은 굳은 쇠처럼 침중했고 또 무거웠다. 그는 두 손으로 설벽운의 어깨를 꽉 부둥켜 안았다. 호유성이 만약 손을 놓는다면 설벽운은 자기의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설벽운은 그의 손이 자기 어깨에 와 있는 것을 보자 즉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랭하게 말했다.

"손을 놓으세요. 그리고 이후부터는 영원히 나를 볼 생각도 하지 마세요."

순간 호유성의 얼굴이 크게 붉어졌다. 그는 스스로 손을 풀며 설벽운의 표정을 주시했다.

"당신도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구려?"

설벽운은 여전히 냉막하게 말했다.

"세상엔 절대로 비밀이 없는 법이에요."

"당신...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구려?"

호유성의 음성은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초류빈은 가볍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사실 그녀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호유성은 아까부터 계속 초류빈을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넋 나간 사람처럼 반문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초류빈의 이 대답을 듣고 호유성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알게 되었는가?"

초류빈은 말을 꺼내기 싫은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바로 형님이 내 팔을 잡고 실수인 척하며 전칠을 시켜 내 혈도를 찍게 할 때였습니다. 나는 비록 알고 있었지만 결코 형님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습니다....."

호유성이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손목의 힘줄이 하나 둘씩 튀어나왔다.

그는 창백한 표정으로 초류빈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말을 하지 않았던 거지?"

초류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반문했다.

"어째서 그걸 내가 굳이 말해야 하오?"

설벽운은 다시 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당신이 말을 하지 않은 건 바로 나 때문이죠?"

초류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 때문이라고?"

"당신은 내가 알면 마음 상할까 봐, 그리고 우리 집이 파산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우리 집은 본래부터 당신의....."

설벽운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시 눈물을 쏟았다.

초류빈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여인들은 어째서 장담을 하는 걸 좋아할까? 부인, 내 아까도 말했지만 말을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던 거요. 그리고 내가 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절대로 나를 놓아줄 리가 없다는 것을 이미 짐작했기 때문이었소."

초류빈은 쉴새없이 웃으며 또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다. 어느덧 그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웃음 때문에 흐르는 눈물인지 아니면 기침이 너무 심해 눈물이 나온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설벽운은 그의 기침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난 이제 모든 것을 알았으니까요."

"안다고? 대체 당신이 뭘 안다는 거요? 당신은 호유성이 어째서 내게 이렇게 대하는지 알고 있소? 그렇소. 당신도 알다시피 그는 내가 당신의 집안을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까 봐 그러는 거요."

초류빈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이런 것은 모두 그가 집안을 중요하게 여기고 더욱 당신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오."

설벽운은 그를 쳐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후후후후....그는 당신을 해쳤는데 그래도 당신은 그를 위해주다니 정말 좋은 친구예요. 당신은...하지만 나도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당신이 내게 그처럼 대할 수가 있느냔 말예요."

설벽운의 이 말은 격동에 가득차 있어 도대체 그녀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초류빈은 다시 격렬하게 기침을 계속하며 이번에는 피까지 토해내었다.

호유성은 초류빈을 내려다보며 말을 꺼냈다.

"자네의 말이 맞았네. 그건 바로 이 집을 위해 그리고 내 아들을 위해서였지. 우린 본래 매우 다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자네가 온 후로 모두가 싹 변해 버렸네."

호유성은 여기까지 말을 꺼내더니 갑자기 격동이 치미는지 미친 듯이 소리쳤다.

"난 본래 한 가정의 가장이었네. 그런데 자네가 온 후부터 나는 마치 손님처럼 변해 버렸네. 그리고 나는 매우 건강하고 쾌활한 자식을 갖고 있었는데 자네가 온 후로 그 애는 반 죽은 애나 마찬가지로 되어 버렸네."

초류빈은 길게 탄식하며 괴로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맞았습니다. 난...난 확실히 오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호유성은 갑자기 설벽운을 꽉 부둥켜 안았다.

"그러나 내가 제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당신이오. 난 모든 것을 그에게 되돌려 줄 수 있어도 당신만은 절대 놓칠 수가 없소."

호유성은 말을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설벽운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가 흔드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길고 검은 속눈썹 아래로 눈물이 마치 천 개의 진주를 풀어놓은 듯 방울 방울 떨어졌다.

"그러나 당신이 아직도 날 사랑하고 있다면 결코 이렇게 할 수는 없어요."

"그렇소. 나는 결코 이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소. 그러나 또 하나의 무서움이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오."

설벽운은 가만히 웃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무엇을 그처럼 무서워했죠?"

호유성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떠들었다.

"나는 당신이 떠날까 봐 그랬던 것이오. 당신은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난 이미 짐작하고 있었소. 그것은...당신이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 당신이 그에게로 돌아갈까 봐 그랬던 거요."

설벽운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앙칼지게 외쳤다.

"이 손 치우세요! 당신은 이 손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은 더욱 추악해요. 당신은 날 겨우 그런 여자로 보았나요? 그리고 저 사람도 겨우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았나요?"

설벽운은 땅에 엎드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목놓아 통곡했다.

"당신은 어쩌면 그리도 어리석어요? 당신은 내가 당신의 아내라는 것을 이미 잊었나요?"

그러나 호유성은 그 자리에 선 채 마치 석상으로 변해 버린 듯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초류빈은 그런 그를 쳐다보며 괴로운 듯 중얼거렸다.

"이것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라는 말인가? 누구의 잘못인가 ....."

한편 낭천은 온몸이 봄날의 아지랑이 속에 잠긴 듯 나른하고 구름 위에 누워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눈앞의 공기 속에는 마치 일종의 빛이 감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코를 진동시키는 향기가 감돌았다. 낭천은 이미 깨어났지만 아직까지도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낭천은 여태까지 한 번도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이런 꿈조차 꾸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는 꿈을 꾸어도 영원히 녹지 않는 빙설이 뒤덮인 높은 산과 넓고 거치른 황야, 눈을 번뜩이며 노리는 야수들, 그리고 끊임없이 덮쳐오는 재난과 고난의 연속을 겪고 있었다.

낭천이 눈썹을 꿈틀거리고 있으려니까 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깨어나셨어요?"

이 음성은 매우 부드러웠고 정다움이 가득 넘쳤다.

낭천이 이끌리듯 눈을 떠 보니 눈앞에 한 절색의 얼굴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표정,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미소, 두 눈동자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정감까지 감돌고 있었다. 그 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낭천의 어머니와도 같았다.

낭천이 어려서 병이 났을 때 어머니가 이렇게 옆에 붙어 앉아 이처럼 부드럽게 자기를 지켜보았던 것을 기억해 내었다.

설소하, 눈앞의 여인은 바로 그녀였다.

낭천은 깜짝 놀라 침상에서 내려오려 했다.

"여기가 어디오?"

그러나 막 일어서는 순간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설소하는 그를 바로 눕히며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 주었다.

"이곳이 어디라는 것은 상관하지 마시고 그냥 당신의 집으로만 생각하세요."

"나의 집?"

낭천은 여태까지 이 집이라는 말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낭천에겐 여태까지 집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설소하는 눈을 내리깔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엔 당신의 집은 분명히 부드럽고 따스할 것 같아요. 당신에겐 그처럼 좋은 어머님이 계시니까...당신 어머님은 분명히 부드럽고 아름답고 또 당신을 충분히 사랑해 줄 거예요."

낭천은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겐 집도 없고 어머님도 없소."

설소하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혼미상태 속에서 계속 어머니를 불렀어요."

낭천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표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어머님은 돌아가셨소."

그의 얼굴에는 비록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눈동자는 이미 젖어 있었다.

설소하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미...미안해요. 내가 이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설소하가 말끝을 흐린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낭천은 길게 한숨을 내뿜으며 물었다.

"당신이 날 구했소?"

"그때 당신은 기절해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를 거예요. 제가 당신을 이 방으로 데려왔어요. 그러니 마음놓고 충분히 요양이나 하세요. 누구를 막론하고 이 방에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으니까요."

낭천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설소하의 눈길을 피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내게 이르기를 절대 남의 도움을 받지 말라고 하셨는데 지금....."

낭천의 석고와 같은 견고하고 표정없는 얼굴이 갑자기 격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내 지금 당신에게 한 목숨을 구제받게 되었구려."

설소하는 그를 위로하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제게 빚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제 목숨도 당신이 구해 주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낭천은 길게 탄식을 내뿜고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째서 나를 구했소? 어째서 나를 구했느냔 말이오?"

설소하는 말없이 그를 한참 내려다보고 있다가 희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내가 어째서 당신을 구했는지 자연히 알게 될 테니까요....."

설소하의 손가락은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따스하기는 마치 수증기와도 같았다. 순간 설소하의 아름다운 얼굴이 동녘 하늘처럼 붉어졌다.

낭천은 참을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그의 마음은 본래 암석처럼 견고했는데 어찌 된 셈인지 지금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파문이 일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평정한 호수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에게 이런 감정이 남아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두 눈을 꼭 감고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지금은 낮이오, 밤이오?"

"아직 삼경도 못 되었어요."

낭천은 그 말을 듣자 불현듯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설소하가 깜짝 놀라 그의 상체를 눌렀다.

"아니, 당신은 이 밤중에 어딜 가려고 그러세요?"

낭천은 이를 악물었다.

"난 절대로 그들이 초류빈을 데려가게 놔둘 수 없소."

설소하는 고개를 돌리며 냉막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떠났어요."

낭천은 그만 침상에 고꾸라지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은 삼경도 채 되지 않았다고 했지 않소?"

"지금은 아직 삼경도 못되었지만 초류빈은 어제 아침에 이미 떠났어요."

낭천은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쳤다.

"어제 새벽에? 그렇다면 내가 하루 동안이나 기절해 있었다는 말이오?"

"당신의 상세는 실로 엄청났어요. 때문에 당신 말고는 그 누구도 참아내지 못했을 거예요. 자, 그러니 잠자코 상처나 치료하도록 하세요."

설소하는 침상 머리맡에 있는 붉은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가볍게 닦아 주었다.

낭천은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설소하는 가볍게 그의 입을 막았다.

"더 이상 그의 말은 꺼내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가 처해 있는 환경이 당신보다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그를 구하려면 먼저 당신의 상세부터 완치시키도록 하세요."

그녀는 그를 똑바로 눕히고 다시 이불을 덮어 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심미 대사가 그를 소림사로 데려가겠다고 했으니 도중에 절대로 어떤 위험은 생기지 않을 거예요."

낭천은 체념한 듯 아무 말없이 두 눈을 감았다.

한참 후 낭천의 모습을 옆에서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던 설소하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가 가는 도중에 절대로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낭천은 이렇게 물으면서 어째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궁금해 하였다.

설소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하였다.

"절대로 없을 거예요. 심미 대사와 전칠이 그를 호송하고 가는데 누가 감히 덤빌 수 있겠어요?"

그녀는 가만히 낭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저를 믿는다면 마음놓고 주무세요. 저는 이 옆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요."

낭천은 눈을 크게 떠서 설소하의 부드럽고 천진스런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녀의 눈 속에서 헤매던 낭천의 두 눈은 천천히 감겼다.

초류빈은 마차에 등을 기댄 채 말없이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건너편의 심미 대사와 전칠에게 눈길이 멎자 갑자기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전칠은 웃음소리를 듣자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쏘아보았다.

"무엇 때문에 웃는 거냐?"

"난 그저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오."

"재미있다고?"

그리고 초류빈은 길게 하품을 하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이런 모습은 마치 잠을 자려는 것 같았다.

전칠은 화가 치미는 듯 그를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나의 어디가 그처럼 우스우냐?"

"미안하지만 난 당신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오. 세상에는 비록 많은 흥미거리가 있지만 당신만은 예외요. 당신은 정말 재미가 없을 지경이라는 말이오."

전칠의 얼굴빛이 갑자기 변하는가 싶더니 한참 후에야 천천히 손을 놓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심미 대사는 쪽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있다가 눈썹을 불쑥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노승의 어디가 재미있다는 말이오?"

심미 대사는 여태껏 한 번도 남이 자기더러 재미있다고 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초류빈은 지루한 듯 다시 하품을 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당신을 보고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아직 한 번도 마차를 탄 화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오. 나는 출가인이라면 말도 못 타고 마차도 못 타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

"승려도 사람이니 비단 말을 타야 할 뿐만 아니라 밥도 먹어야 하는 법이오."

초류빈은 눈을 크게 뜨고 의아스러운 듯 물었다.

"당신이 기왕 마차를 탔다면 어째서 편안하게 앉지 않는 거요? 난 당신이 그처럼 엉거주춤 앉은 것을 보고는 엉덩이에 혹이라도 난 줄 알았소."

순간 심미 대사의 표정이 완전히 음침해졌다

"넌 노승이 너의 입을 틀어막아 주길 바라느냐?"

"만약 나의 입을 봉쇄하고 싶다면 술병으로 하시오. 될 수 있는 한 술병에 술을 가득 채우고요."

초류빈은 조금도 초조한 기색없이 비아냥거렸다.

심미 대사가 전칠을 향해 눈길을 돌리자 전칠은 천천히 손바닥을 초류빈의 목줄기로 내밀었다.

"내가 이 손에 힘을 주기만 하면 넌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있느냐?"

초류빈은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만약 그 손에 힘을 준다면 많고 많은 재미있는 말을 듣지 못할 것이오."

"흥, 그렇지만 내 듣지 않기로....."

전칠이 여기까지 말하고 막 손에 힘을 주려는 찰나 갑자기 말이 크게 울부짖으며 마차가 우뚝 멈추는 것이었다

마차는 원래 비스듬한 내리막길을 매우 급하게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멈추자 마차 속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게 되었다. 그 서슬에 사람들은 머리를 마차 천장에 부딪칠 뻔했다.

전칠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크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너희들이 혹시....."

전칠이 소리치며 마차 밖으로 머리를 내민 순간 그만 입을 쩍 벌리고 안색까지도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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