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1일 목요일
63 소이비도 제4권 추산식推山式
추산식(推山式)
낭천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떠한 검을 사용한다고 해도 상관금홍을 상대할 수는 없소."
손소홍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의아스러운 눈빛을 띠며 낭천을 주시했다.
"그럼...어떻게 해야만 그를 상대할 수가 있지요?"
이러한 그녀의 물음에 낭천은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어떠한 방법으로 상관금홍을 상대해야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쉽사리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세상에는 말로 해서 안 되는 것도 많았다.
손소홍은 가볍게 탄식을 터뜨리더니 입을 열었다.
"상관금홍 이외에도 당신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낭자에게 묻겠는데 상관금홍이 이곳에 돌아왔소?"
"아마 틀림없을 거예요."
말이 끝나자 낭천은 손소홍을 주시하며 즉시 다그쳐 물었다.
"어째서 틀림없다는 것입니까?"
"그가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남들이 절대로 볼 수가 없게 되어 있지요."
"초류빈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창피한 일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손소홍은 다시 길게 탄식을 터뜨렸다.
"한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땐 남에게 보이기를 싫어하지요."
이러한 말을 듣고 난 낭천은 잠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손소홍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손소홍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 나더니 낭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음식 중에서 무엇을 제일 좋아하세요?"
"별로 가리는 것 없이 아무것이나 다 좋아합니다."
"저는 복숭아를 제일 좋아해요. 저는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매우 행복감을 느끼지요. 특히 겨울밤에 이불 속에서 혼자서 몰래 복숭아를 먹을 때 가장 행복스러움을 느끼지요."
이렇게 말을 하고 난 그녀는 방그레 웃음을 떠올리더니 다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복숭아를 먹는 것을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별로 행복을 느끼지는 못하지요."
여기까지 말을 듣고 난 낭천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손소홍을 향해 급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상관금홍이 초류빈을 죽이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상관금홍이 그를 성급하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정할 수 있었던 거예요."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낭천은 즉시 다그쳐 물었다.
"어째서 그렇다는 것이오?"
손소홍은 두 눈을 깜박거리며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만약에 저에게 복숭아가 단 한 개뿐이었다면 저는 틀림없이 천천히 먹었을 것이에요. 천천히 먹으면 먹을수록 나의 행복스러움을 느끼는 시간이 길어지니까요. 그것을 만약 빨리 먹어치우게 되면 내심 쓸쓸하게 될 것이에요."
사실 그러한 짐작이란 쓸쓸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텅 비는 듯한 공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허감이란 간단한 것이지만 그녀는 형용해 내지를 못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나서 다시 계속해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상관금홍의 눈에는 초류빈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유일한 적이지요. 그러나 초류빈을 죽이고 나면 틀림없이 쓸쓸함을 느끼게 될 것이에요."
여기까지 말을 듣고 난 낭천은 검을 허리춤에다 천천히 끼우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매우 여유있게 말을 꺼냈다.
"나는 그를 죽이고 난 후에도 절대로 쓸쓸함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뱉고 난 그는 큰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의 걸음은 별로 빠르지가 못했으나 무게가 있었다.
상관금홍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당연히 먼저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신의 근육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또한 긴장이 풀리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 또한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준비인 것이다.
그는 천천히 돌계단으로 올라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돌연 열여덟 명의 황의인이 나타났다.
이 사람들은 금전방 총타 소제지의 수위들로서 금전방의 정예들이다.
낭천은 길게 장탄식을 터뜨리더니 이윽고 냉랭하게 말을 꺼냈다.
"내 비록 살인을 하고 싶지는 않으나 다른 사람이 내 길을 막는 것도 과히 좋아하지는 않소."
그러자 한 사람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무엇인데, 그래 길을 막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낭천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 길을 막는 자에게는 죽음뿐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네놈은 개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개를 죽이지 않는다. 나의 검은 사람을 죽이는 검이다."
이러한 말이 끝나는 순간 상대방의 웃음소리는 끊어지고 말았다. 그의 대나무로 된 검이 발해진 것이다.
대나무에는 빛이 없었으며 검을 찌르는 순간 검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나무로 만든 검이 살인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니 그 어떠한 검이라고 해도 일단 낭천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면 살인을 쉽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광채도 매우 강하게 발했던 것이다. 그것은 검에서 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독에서 나온 빛이었다.
이 순간 다섯 개에 달하는 병기가 동시에 낭천을 향해서 재빠르게 날아들었다. 두 자루의 예리한 빛을 띠고 있는 칼은 그의 몸을 향해 날카롭게 공격해 들어갔다. 이러한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던 손소홍은 웬지 차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녀는 낭천이 다른 사람들과 별로 싸운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설사 싸웠다고 해도 한 사람씩의 일 대 일이었지 협공을 당해 본 적은 매우 드물었다.
그의 검은 한 사람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 동시에 싸우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순간 손소홍은 즉시 달려가서 그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채 달려가기도 전에 다섯 명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예리한 칼날이 낭천의 손에 있는 대나무 검과 부딪치는 것을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그의 대나무로 된 검은 쉽게 부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판관필이 낭천의 혈도를 향해 찔러가는 것을 틀림없이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쓰러진 사람은 상대의 공격자이지 낭천은 아니었다. 그 원인은 판관필을 사용한 사람만이 알 뿐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솜씨가 매우 정확하고 또한 자신이 틀림없이 낭천의 혈도를 찌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관필이 낭천의 목에 가서 닿는 순간 그는 갑자기 전신에 진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대나무 검이 이미 그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낭천의 동작은 그에 비하여 별로 빠르지도 못했으며 다만 눈 깜짝할 사이의 차이가 생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 눈 깜짝할 사이가 바로 치명적인 것이다.
순간 손소홍은 한 마리의 나비와 같이 가벼운 동작으로 몸을 날려 십여 명이나 되는 황의인을 향해 날카롭게 덮쳐 들어갔다.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여자들은 다 그러하듯이 손소홍도 경공술과 암기에 매우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의 무공이 고심하고 강하다고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물론 손소홍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암기는 더할 수 없이 빨랐으며 신법 또한 매우 신속했다. 그리고 발걸음의 변화가 이상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적은 살인이 아니라 낭천을 보호하는 것이다.
낭천이 검을 운용하는 방법은 매우 특이했다. 강호무림의 그 어떠한 문파의 검법과도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그의 검법에는 휘두르고 또 내려치는 것도 없고 오직 일직선에서 똑바로 찌르는 것뿐이다.
찌르는 것은 보통 앞으로 찌르는 것이 정상이나 낭천은 어떠한 위치에서 찌르건 모두 찌를 수가 있었다. 귀밑이나 겨드랑이 그리고 앞뒤도 역시 마찬가지로 다 찌를 수가 있다.
이때였다. 갑작스레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오면서 한 사람이 땅에서 뒹굴었다. 그러자 따로 한 명이 지상도를 전개하면서 날카롭게 공격해 들어왔다. 이 지상도의 사용법은 땅에서 구르면서 쓰는 것으로 이 도법을 연마하기는 매우 힘이 든다. 하지만 일단 연마해 내면 그 위력은 더할 수 없이 강하다.
낭천은 마치 자신의 몸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갑자기 몸을 움츠려 맞은편에서 날카롭게 공격해 들어오는 창을 잽싸게 피하는 동시에 검을 사타구니 밑으로 하여 뒤로 찔렀다.
이때 한 쌍의 병기를 들은 자가 추산식을 전개하여 낭천의 가슴팍을 향해 잽싸게 밀어냈다. 이것 또한 초식이 괴이할 뿐만 아니라 병기도 매우 독특했다.
그 자가 사용한 것은 한 쌍의 봉익금당이었다. 이러한 병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강호에서 매우 드물었다. 그 위에는 쇠로 된 가시가 가득 달려 있으며 추, 기, 괘라는 세 가지 구결을 동시에 병용해서 전개했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것이 몸에 닿기만 하면 살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추궁만월 초식이었지만 뒤이어 전개해 낸 것이 야만분이었다.
낭천은 뒤로 즉시 후퇴를 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면 선기를 잃게 될 것은 뻔하며 또한 선기를 잃게 되면 다른 사람의 무기에 의하여 생명마저 잃어버릴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정면대결은 더욱더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 공격해 들어가면 역시 마찬가지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라 해도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낭천은 그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앞으로 마주 응수해 갔다.
손소홍은 이러한 광경을 보자 아연실색하여 자신도 모르게 하마터면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바로 이때였다. 낭천은 외마디의 고함소리와 함께 대나무 검을 쌍금당의 중앙을 뚫고 앞으로 똑바로 찔러갔다.
그러더니 다음 순간 대나무 검은 상대방의 목을 여지없이 관통시키고 말았다. 상대방의 쌍금당도 낭천의 가슴 앞에 와 있었다. 그러나 낭천의 몸이 채 닿기도 전에 상대는 목에 강한 자극을 받고 갑자기 전신이 오그라졌고 쌍금당을 더 이상 앞으로 밀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아랫도리가 갑자기 싸늘해지더니 금시 쓰러져 버렸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과 공포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그는 세상에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검법이 있으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만큼 그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방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더 이상 아무도 덤벼들지 못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 무서운 죽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 자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는 코로 도저히 맡을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속이 끓어올라 그 자리에서 구토를 일으켰다. 그들이 구토를 일으킨 것은 악취 때문이 아니라 공포스러운 광경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서야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공포스럽고 추악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이란 보지도 못했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며 그 누구도 이러한 죽음을 말하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낭천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태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머지 아홉 명은 두 눈이 휘둥그래진 채 낭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한 사람은 갑자기 허리를 구부려 토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방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어떤 자는 땅에 쓰러져 전신을 비틀었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갑자기 몸을 돌려 변소로 급히 달려갔다.
손소홍도 역시 통곡을 하며 토해내고 싶음을 느꼈다. 그녀도 내심 경악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비애까지도 느꼈다. 이렇게 생명이 비참하게 사라지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를 못했다.
낭천은 대나무 검을 손에 낀 채 앞장서 걸어갔다. 그의 검끝에서는 아직도 피가 한 방울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검은 비단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까지도 그대로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검은 이렇게 비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인간성은 대체 어떠한가.
얼마쯤 걷자 바로 앞에 갑자기 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 문은 고리로 채워져 굳게 닫혀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상관금홍의 침실이다. 상관금홍은 바로 이 안에 있었고 초류빈 또한 그 안에 있다.
상관금홍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아 초류빈의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상관금홍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초류빈이 죽지 않은 것은 틀림없었다.
손소홍은 자신도 모르게 기쁨의 만족스러운 웃음을 떠올리며 문앞으로 급히 달려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달려나오기가 무섭게 갑작스레 그 자리에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상관금홍이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다면 절대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손소홍은 갑자기 심한 현기증을 느꼈으며 발을 잘못 딛어서 마치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려가는 아찔함을 느꼈다. 순간 그녀는 온몸의 맥이 풀려 문에 기댄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기울여 온 그녀의 모든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만약 처음에서부터 실패했었다면 심리적으로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성공 단계에까지 와서 실패를 하다니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러한 타격은 사람으로서 가장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다.
낭천은 얼마 동안을 멍청히 서 있다가 갑자기 한 마리의 미친 야수와 같이 철문을 향해 거세게 몸을 부딪쳐 갔다.
그러나 그의 몸뚱이는 이내 다시 튀어나와 바닥에 나가떨어져 나뒹굴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옷을 툭툭 털며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대나무 검으로 문을 세게 찔렀다.
그러나 이번 또한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문은 그대로 있었고 애석하게도 검만 부러지고 말았다.
철문으로 하여금 이 검으로부터 무너지게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대나무 검이랴.
낭천의 두 다리가 갑자기 휘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온몸에 갑자기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또 어쩔 수 없는 이상한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금시 미쳐 버리는 그런 버릇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미쳐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초류빈은 문 안에서 죽음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상태지만 그러나 그들은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기다린단 말인가? 상관금홍이 득의만면해서 나올 때를 기다린단 말인가? 그가 저 문 안에서 나올 때 초류빈은 과연 살아 있을까?
그럼 무엇을 기다린단 말인가. 초류빈의 죽음을 기다린단 말인가?
상관금홍이 나올 때면 물론 그들까지도 죽이지 결코 그대로 살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나오면 그때는 그들이 죽어야 할 시간이다.
손소홍은 급히 달려와 낭천을 천천히 일으키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서 가 보세요."
낭천은 두 눈을 천천히 치켜올리며 손소홍을 향해 말했다.
"나...나더러 가란 말이오?"
"당신은 꼭 가야만 해요. 나는....."
"당신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그러자 손소홍은 아랫입술을 으스러지도록 깨물면서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나는 당신과 달라요."
낭천은 손소홍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하며 다그쳐 물었다.
"대체 뭐가 다르다는 것이오?"
손소홍은 길게 탄식을 터뜨리고 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벌써 말을 했지만 그가 죽으면 저는 결코 혼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낭천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와 함께 죽을 수는 없소."
손소홍은 마음을 진정시키느라고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어서 가야지요."
그러나 낭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갈 수도 없소."
손소홍은 두 눈을 치켜올리며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다그쳤다.
"아니 무엇 때문이지요?"
낭천은 마른침을 한 차례 삼키고 난 후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손소홍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을 더듬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당신이 그를 위해서 복수를 하려는 것을 저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별로 그렇게 급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 동안 기다리면서....."
낭천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기다릴 수가 없소."
손소홍이 말했다.
"기다리지 못한다면....."
말이 끝나자 낭천은 즉시 다그쳐 물었다.
"기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이오?"
손소홍의 입술에서는 드디어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죽어야 해요."
낭천은 고개를 천천히 숙이면서 대나무 검에 묻어 있는 피를 내려다보았다. 피는 이미 굳어져 버려 처음과는 달리 검붉은 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자 손소홍은 길게 숨을 몰아쉬고 나더니 이윽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되든 안 되든 꼭 시험해 볼 것이라는 것도 저는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결코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도 저는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럼 당신이 이곳에서 초류빈과 같이 죽겠다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소?"
손소홍은 잠시 동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일순 망설이는 듯했다.
다시 천천히 낭천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단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꼭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오."
손소홍은 장탄식을 터뜨리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말투까지 점점 그를 닮아 가는군요."
이러한 말을 듣고 난 낭천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는 듯하더니 이윽고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가 한 말을 시인했다. 그는 그 말을 결코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으로서 초류빈과 사귄 사람이라면 그의 위대한 인격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 만약에 낭천이 초류빈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인간에 대한 어떤 위대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절대 남을 신임해서도 안 되고 또 절대 남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동안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말은 낭천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다. 낭천의 어머니의 인생은 고통과 불행으로 얼룩져 있었다. 낭천은 어머니가 웃는 것을 생전에 보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신 것은 인생에 대해서 아무런 희망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너에게 미안하구나. 나는 네가 완전히 성장한 후에 죽어야 만 마땅한데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이 어미는 너무나 너무나 피곤하다...내가 너에게 남겨 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몇 마디 한 말은 꼭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친히 겪은 교훈이다.....'
낭천은 어머니가 남겨 준 이러한 말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황야에서부터 속세로 들아온 커다란 이유는 인류를 향해 복수를 하고 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황야에서 속세로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만났던 사람이 바로 초류빈이었다. 초류빈은 그로 하여금 인생이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인류 역시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별로 추악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해 주었다. 그는 초류빈의 몸에서 많은 미덕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한 미덕이 초류빈의 몸에 존재하고 있으리라고는 그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초류빈에게 너무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죽은 어머니보다 더.....
초류빈은 그의 어머니와는 반대로 그에게 사상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원한이나 증오가 아니었다.
사람은 증오보다 사상이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증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완전히 섬멸시킬 생각이다.
삶을 섬멸시키고 또한 자신을 섬멸시키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섬멸시키고 싶었으나 그는 모든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초류빈 같은 사람이 이렇게 일생을 마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손소홍은 갑자기 탄식을 터뜨리고 난 후에 입을 열었다.
"상관금홍이 만약 우리가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무척이나 기뻐할 거예요."
이 말을 듣자 낭천은 이를 갈면서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을 꺼냈다.
"마음껏 기뻐하라고 하시오."
이때 돌연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네는 잘못 생각했네."
철문은 비록 무겁고 단단하기는 하지만 문이 열릴 때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조용히 철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초류빈, 그 사람이었다.
그의 모습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탈없이 살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피곤보다 그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러자 낭천과 손소홍은 동시에 같이 고개를 돌리면서 그 자리에서 굳어지고 말았다. 그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환희의 눈물이다. 사람이 기쁨을 당할 때나 또한 슬픔을 당할 때는 눈물 이외에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초류빈의 두 눈에도 어느 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가에 애써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잘못 생각했네. 마음이 좋은 사람들은 영원히 고통스럽지 않을 걸세. 악인들은 고통스러울 때가 기쁠 때보다 더 많이 있네."
그러자 손소홍은 그의 품에 갑작스레 안기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순간 흐느끼는 것 외에 아무 말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만나지 않았는가.
낭천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상관금홍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초류빈은 손을 들어 손소홍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모르긴 해도 매우 고통스러울 걸세. 그는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었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낭천은 두 눈을 치켜올리며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다그쳐 물었다.
"그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그는 나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었네. 심지어 나로 하여금 절대로 손을 쓰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지. 하지만 그는 일부러 기회를 놓쳤다네."
상관금홍과 같은 사람이 어찌 기회를 헛되게 놓칠 수가 있겠는가. 손소홍은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무엇 때문이에요?"
그러자 초류빈은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일종의 도박을 한 것이오."
말이 끝나자 손소홍이 즉시 다그쳤다.
"도박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지요?"
초류빈은 마른침을 한 차례 삼키고 나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내 비도탈명을 과연 피할 수가 있는지 마음속으로 도박을 한 것이요."
순간 손소홍의 두 눈에서는 밝은 광채가 폭사되어 나왔다.
"그는 비도탈명을 믿지 않았던 것이군요."
그러자 초류빈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는 지금까지 계속 살아오면서 그 누구도 믿지를 않았소. 그가 믿을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었소."
손소홍이 말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지요?"
초류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씹을 열었다.
"그가 졌소."
이것은 매우 간단하게 내뱉은 한 마디의 말이었다. 승부가 결정된 것은 일순간의 일이다. 하지만 그 일순간이 얼마나 긴장스러운 것인가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 일순간이 강호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손소홍 자신은 그 일순간에 일어났던 일을 보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손소홍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생각만 해도 숨통이 저절로 막혀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비도탈명이 은빛 나는 광채를 발하면서 날아가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장관이었을까?
그리고 상관금홍의 목에 꽂혀지는 순간, 그 순간보다 더 흥분스럽고 감동적일 때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불멸의 광채인 것이다.
문이 열렸다. 모든 세상을 영원히 문 밖에서 격리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만약 그 누구든지 세상과 격리되고 싶으면 자신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만한다.
낭천은 열려진 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문 안에 들어서자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비도탈명이었다. 백발백중의 비도탈명.
생각했던 대로 비도는 상관금홍의 목을 관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치명적일 수가 있었다.
칼날은 목 밑부분에서부터 앞으로 하여 비스듬히 위로 그어 올라갔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손을 쓴 것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금시 알 수가 있었다.
이 일대의 효웅이 죽는 모습도 그가 멸시해 오던 사람들이 죽은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으며 숨이 끊어져 버린 지금도 경악과 회의의 빛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생명은 원래부터 평등한 것이다. 특히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서야 이러한 이치를 아는 것이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상관금홍도 마찬가지였으며 그 역시도 비도탈명이 이렇게 빠를 줄은 지금까지도 믿지를 못했다.
심지어 낭천까지도 이러한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초류빈이 어떻게 하여 비도탈명을 전개해 낸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다만 그 당시의 모든 상황을 초류빈이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초류빈이 쉽사리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물어본다는 것을 일단 포기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 순간의 일을 묘사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상관금홍의 손은 오그라져 있었으며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했다. 그는 아직도 패배를 시인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잡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낭천은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 사람에 대하여 갑작스레 동정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찌하여 이러한 느낌이 드는지 자신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동정하는 것이 상관금홍이 아니라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도 사람이고 또한 상관금홍도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비애와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낭천은 몸을 돌렸다.
그제야 그는 형무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형무명은 마치 누가 들어온 것에 대해서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했다.
그는 비록 앞에 있는 거대한 상 뒤에 서 있었지만 마치 또다른 한 세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상관금홍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상관금홍의 생명은 바로 그의 생명이며 그는 바로 상관금홍의 그림자인 것이다. 만약 생명이 사라졌다면 그림자도 사라지는 것이다. 어떠한 시간이나 장소이건 간에 형무명이 있는 곳이라면 일종의 무형의 위협과 살기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느낌이라고는 전혀 들지 않았다. 낭천은 방 안으로 들어올 때 형무명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비록 살아 있기는 하지만 생명이 없는 표본에 불과했다.
그러자 낭천은 길게 탄식을 터뜨렸다. 그는 형무명의 심정이 어떠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도 그러한 경험을 이미 해 보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형무명은 갑자기 걸어오더니 한 손으로 상관금홍의 시체를 들어올리고는 밖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문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낭천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복수할 생각이 없소?"
그러나 형무명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발걸음조차도 멈추지 않았다.
낭천은 냉정하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물었다.
"하하...감히 못하는 것이오?"
형무명은 그제야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낭천은 입을 열었다.
"당신의 허리에 검이 있다면 어째서 뽑지 않는 것이오?"
이렇게 말을 하고 난 낭천은 말을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의 검은 장식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오?"
그러자 형무명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상관금홍의 시체는 그의 손에서 떨어졌고 검을 뽑아서 낭천의 목을 향해 찔렀다.
이 모든 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그의 동작은 더할 수 없이 신속했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낭천의 목에서 반 자 정도 떨어진 곳에까지 왔을 때 그의 동작은 갑자기 중지되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낭천의 수중에 있는 대나무 검은 그의 목에서 이미 반 치 정도 떨어진 곳까지 접근해 있었다.
낭천은 세 자루의 대나무 검을 깎았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바로 두 번째 검이다. 그는 형무명을 주시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동작은 매우 빠르오."
그는 잠시 말을 끊고는 무엇인가 잠시 생각을 더듬더니 다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무참하게 죽일 수는 없소. 무엇 때문인지 아시오?"
그러자 형무명은 힘없이 검을 내렸다. 낭천은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나더니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그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죽기를 더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오. 자신이 오직 죽기를 원하고 있을 때는 절대로 남을 죽일 수가 없는 것이오."
형무명의 두 눈에서는 고통스러운 빛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는 얼마 동안 무거운 침묵을 지키다가 암담한 표정을 나타냈다. 그러더니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낭천이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죽일 수 있소."
형무명은 역시 고개만을 가볍게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낭천이 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죽이지는 않겠소."
그러자 형무명이 두 눈을 치켜올리며 다그쳐 물었다.
"나를 죽이지 않는다고?"
"내가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바로 형무명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순간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형무명의 얼굴이 갑작스레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양쪽 볼과 눈언저리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났다. 그는 이러한 말이 자기가 낭천을 만났을 때 했던 말과 똑같은 것이라는 걸 생각할 수가 있었다.
다만 그 당시는 자신이 낭천에 대해서 얘기를 했으나 오늘은 낭천이 그에게 한 것이 다를 뿐이다.
그는 이 몇 마디를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그의 두 눈에서는 화염이 떠올랐으며 그것은 마치 타다 남은 재가 마지막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았다.
낭천은 형무명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제 그만 가 보시오."
형무명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큰소리로 다시 반복했다.
"가라고.....?"
낭천이 다시 말을 꺼냈다.
"당신이 나에게 기회를 한 번 주었으니 나도 당신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겠소. 마지막 기회를....."
그러자 형무명은 낭천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상관금홍의 시체를 들어올리고는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낭천은 밖으로 걸어나가는 형무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통쾌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형무명이 전에 그에게 준 것을 낭천은 똑같은 방식으로 형무명에게 돌려준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그 생명을 잃었을 때 두 가지 힘만이 그 생명을 잃은 마음을 재생시켜 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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