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목요일
강호무정 제12장 파소림초(破少林招) - 검궁인
제12장 파소림초(破少林招)
①
무림맹 개봉 지단은 한 채의 전장(錢莊)이었다.
외부적으로는 전장이었으나 기실은 무림맹의 지단이었다. 이곳에 삼인이 찾아왔다.
가운데 인물은 삼십대 인물로 자의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금도(金刀)를 차고 있었다. 그는 눈빛이 부리부리하고 얼굴은 각이 져 있었으며 눈썹이 짙었다. 양 옆의 두 사람은 그와 비슷한 또래로 수행원인 듯 했다.
그들은 아침 일찍 개봉성에 입성해서 곧장 이곳 전장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삼인이 전장의 문으로 다가가자 누군가 앞을 가로 막았다.
"무슨 일이오?"
앞을 막은 자는 눈빛이 범상치 않은 무사 차림의 사나이였다.
그는 무림맹 산하의 무사로 백색마인을 잡기 위한 특수 조직에 속한 인물이었다.
"안에 소림의 오현대사(吾玄大師)께서 계시다는 말을 들었소만?"
자의인의 음성은 낮았으나 어딘가 위엄이 있었다. 무사는 흠칫하더니 반문했다.
"실례지만 귀하는 어떤 분이신지?"
자의인은 담담히 말했다.
"계시다면 전해 주시오. 추성결(秋星潔)이란 사람이 찾아왔다고 말이오."
"추성결......?"
처음 듣는 이름이었으나 어딘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형님. 오랜만이오."
"아미타불......!"
방 안에 대좌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의 젊은 중과 추성결이었다. 추성결은 방 안에 단정히 앉아 있는 노란 승복을 입은 중을 보는 순간 이미 눈시울이 젖고 있었다.
중은 바로 소림의 후기제일인이라는 오현대사였다.
그의 나이 삼십이 세. 그 나이에 후기제일인이란 소리를 듣는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현대사는 청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눈빛이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우. 정말 오랫만이군. 자네가 황궁의 금위대장이 되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어인 일인가?"
오현과 추성결은 사촌형제였다.
속가 때의 오현대사의 이름은 추성웅(秋星雄)이었다. 그들은 전란(戰亂)중에 원나라 병사들에 의해 가문이 멸화된 이후로 헤어졌었다.
그들 중 하나는 주원장이 이끄는 군대에 가담하여 대명제국 건국의 초석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추성결이었다.
각자 행적도 모른 채 헤어졌던 사촌형제,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깊은 감회에 잠겨 있었다.
추성결은 오현의 손을 덥썩 잡았다.
"형님! 이렇게 훌륭한 모습을 뵈오니 아우의 가슴이 터질 듯 합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오현은 비록 속세 사람은 아니었으나 역시 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맑은 눈에도 눈물이 넘치고 있었다.
이제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무림맹의 막중한 사명을 받고 백색마인을 잡기 위한 특별조직의 영수가 되어 강호에 나온 것이었다. 그의 휘하에는 명령 하나면 움직이는 무림인이 수천이 넘었다.
그래도 혈육지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오현도 추성결의 손을 마주 잡은 채 지난 날의 감회에 젖어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추성결은 황궁에서 나온 이후 곧장 소림사로 찾아 갔다. 그러나 이미 오현은 무림을 어지럽히는 백색마인을 잡기 위한 특별 조직의 영수가 되어 떠난 뒤였다. 그리하여 수소문 끝에 이곳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는 오현에게 자신이 황궁의 특별 명령을 받고 나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오현대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등진강이라고? 그 아이가 그토록 교활하다면 문제가 달라지겠는 걸."
그는 그동안 궁금했던 백색마인의 정체를 추성결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아무도 몰랐던 비밀이었다.
그러나 등진강이 황궁에 환관으로 잠입하여 수년 간을 기다린 끝에 영약과 소수마경을 훔쳐 달아난 내막을 듣고는 가슴이 섬뜩함을 금치 못했다.
오현은 소림사를 떠날 당시 백색마인을 제거하는 일에 그다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비록 무림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는 일대마인이라 해도 그 역시 소림의 제일고수였던 것이다.
마공(魔功)이 아무리 강하다해도 소림의 불문무학에는 전문적으로 마공을 격파하는 선공(禪功)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추성결의 말을 듣고 오현은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백색마인이 단순히 무공만 강하다면 얼마든지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황궁에서의 일을 듣고 보니 내심 두려운 마음까지 일게 되었다.
추성결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서 아우도 대영반의 특명을 받고 나온 것입니다. 놈을 죽이고 마경을 회수해야 하는 것이 이 아우의 임무입니다."
추성결은 검미를 치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아우는 황궁에만 있었기 때문에 강호정세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따라서 이번 일에 형님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아미타불. 잘 왔네. 나 역시 혼자의 힘보다는 아우의 힘이 필요할 것 같네. 우리 손을 잡고 함께 뛰어봄세."
"하하하하! 우리 형제가 손을 잡은 이상 놈은 결코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미타불, 나도 그렇게 되길 빌겠네. 어쨌든 놈은 살생을 밥먹듯 하는 악마이니 시간을 끌면 끌수록 무림이 피폐해질 걸세."
②
개봉에서 낙양(洛陽)을 향해 뻗은 관도를 가로지르던 수레는 방향을 바꾸었다.
북(北)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나 노파와 거적 속의 가짜 시신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빈 수레만이 덜그럭거리며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노파는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름아닌 조천백이었다. 시신으로 위장하고 있던 자는 백리진강이었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웃고 있었다.
"정말 냄새 때문에 죽을 뻔 했소이다."
조천백은 껄껄 웃었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것이 있지 않은가?"
"얻은 것이라니?"
백리진강이 의아해 하자 조천백은 실망한 듯이 말했다.
"아니 그러고도 깨달은 것이 없단 말인가? 생각보다 자네는 아둔한 편이군."
그제서야 백리진강은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긴 그렇소. 강호에서는 무공보다도 당신같은 늙은 너구리가 더욱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하하하하핫핫핫---!"
조천백은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네. 역대 무림을 둘러보아도 무공의 일인자가 천하를 지배하지는 못했네. 무공보다는 지략이 우선이네."
"......."
그는 마음이 흐뭇해졌다. 이 며칠 간 그는 백리진강과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느꼈던 살벌함이 많이 둔화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백리진강의 마음은 여전히 북천의 빙동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그것은 백리진강의 마음 속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한(恨)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그 내력을 알 리 없었다.
백리진강에게는 어린 시절 진산채에서 일어났던 일이 너무도 강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동안 고마왔소."
백리진강이 안색을 바꾸며 말하자 조천백은 흠칫했다.
"떠날 생각인가?"
"길이 다르니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하긴 그렇군.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으니 말이야."
조천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화산(華山)으로 가 장천림 일행을 만나야 했다. 그는 잠시 백리진강을 바라보더니 손을 잡았다.
"그동안은 즐거웠네. 마치 오래 전에 헤어졌던 아우를 만난 기분이었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든 현명하게 헤쳐나가기를 빌겠네."
"......."
백리진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입을 연다면 자신조차도 어떤 말이 나올지 몰랐다.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
그는 내심 그렇게 말하며 냉정하게 돌아섰다.
"명심하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힘보다는 머리를 쓰게. 그것이 강호에서 살아가는 요령이니 말이야......."
등 뒤로 호의에 찬 조천백의 말이 들렸다. 백리진강은 그저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떠났다.
조천백.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헤어지는 지금 그는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런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③
홍무(洪武) 15년 2월 25일.
눈덮인 와호령(臥虎嶺)을 넘는 사나이가 있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산길이었다.
행색으로 보아 그는 사냥꾼 차림이었다. 이미 목적지가 정해진 듯 그는 일직선으로 남하(南下)하고 있었다.
다름아닌 장천림이었다. 그는 당가보를 떠난 이후 곧바로 남하하지 않고 섬서(陝西) 쪽으로 우회했다가 다시 장강을 건너 남하했다.
그것은 추적자들을 따돌리기 위함이기도 했으나 목적지가 화산(華山)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장강을 건넌 그는 방향을 바꾸어 화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는 무수한 검문을 받았다.
이미 중원 전역에는 무림맹의 인물들이 무수히 퍼져 있었다. 도중에 몇 번의 위기를 만났으나 그때마다 그는 무사히 넘겼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으로 장하영이나 석회림, 조천백이 염려되었다. 한편으로 그들도 무사할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들의 능력을 어느 정도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
문득 지평선 저쪽에서 한 가닥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연기는 눈덮인 언덕 저편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였다.
연기를 보는 순간 허기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만 하루 반나절 동안 입에 음식물을 댄 적이 없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잠시 후 그는 연기가 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위험이 수시로 다가오고 있는 싯점에서 배가 고프다는 것은 체력 안배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묵묵히 걸었다.
지금 그는 사냥꾼의 복장을 하고 있으므로 여하한 일이 있어도 위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덕을 넘자 아담한 모옥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냥꾼이 사는 모옥이었다. 모옥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으니 저곳에 가면 허기를 면할 수 있으리라.
모옥 둘레에는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장천림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모옥으로 다가갔다.
"......!"
문득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문 앞에 당도한 순간 직감적으로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모옥에는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겉으로는 인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모옥으로부터 풍기는 무형의 기운 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낀 것이었다.
'잘못 왔다.'
그는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나도 늦어 있었다. 그가 주춤하는 순간 모옥의 문이 열린 것이었다.
모옥으로부터 걸어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삼십 대의 젊은 중이었다.
파랗게 깎은 청년 중의 머리 위에는 여섯 개의 계인(戒印)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소림(少林)?'
장천림의 뇌리에 직감적으로 떠오른 것은 이곳이 소림사가 있는 숭산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때 중은 그를 바라보고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천림의 반응은 빨랐다. 그는 합장을 하고 먼저 선수를 쳤다.
"아니 이런 산중에 스님께서 웬일로?"
어쩔 수없이 젊은 중은 함께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시주께서는 어인 일로 이곳에 오셨소?"
장천림은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으므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예. 저는 사냥을 하다가 워낙 눈이 많이 쌓여서...... 험, 또 배도 고프고 해서 들른 것입니다요."
그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중은 여전히 의심쩍은 눈으로 그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장천림의 복장은 사냥꾼으로부터 얻어입은 것이었으므로 복장만으로는 아무 것도 알아낼 길이 없었다.
이때였다. 모옥 안으로부터 한 가닥 늙은 음성이 들려왔다.
"정심(鄭深) 사질....... 그 분을 안으로 모시게."
청년 중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옆으로 비켜 장천림에게 길을 터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눈에는 미심쩍은 빛이 가득 남아 있었다.
장천림은 내친 걸음이라 어쩔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모옥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대로 모옥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무쇠솥에서는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방 안의 인물들은 도합 일곱 명으로 하나같이 승복을 걸친 중들이었다. 그들 중 한가운데 앉아 있는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승이 일어서며 장천림을 맞이했다.
"아미타불. 어서 오시오, 시주. 노승은 소림의 각현(覺玄)이라고 합니다. 개봉부로 가던 중 이곳에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장천림은 황급히 마주 절을 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시주께서는 웬일로 이런 산길을 지나시오?"
한편 장천림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각현이라면...... 소림 사대금강(四大金剛) 중 복호금강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자는 소림의 장문인과 동배로써 좀체로 강호에 나서지 않는 자인데 어인 일로......?'
장천림은 절로 긴장감을 느꼈다.
그의 짐작은 맞았다. 그들은 백색마인을 잡기 위해 파견된 소림의 후기지수 오현대사를 지원하기 위해 뒤늦게 소림을 출발한 일행이었다. 각현대사는 소림십팔나한 중 여섯 명의 나한승을 대동하고 가는 길이었다.
장천림은 그야말로 호랑이굴 한가운데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 셈이었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하필이며 호굴에 들어오다니.......'
그러나 그럴 수록 침착해야 했다. 장천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야 뭐...... 사냥으로 밥을 먹는 놈이니 그렇다 치고 스님들이야말로 어인 일로 이 험한 곳에 오셨습니까? 이곳은 호환(虎患)이 잦은 곳인데......?"
그의 어리석고 멍청해 보이는 태도에 각현대사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였다.
"시주!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오!"
옆에 있던 사십대의 중이 소리를 질렀다.
그가 보기에 장천림이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이 눈에 거슬린 것이었다. 더욱이 각현대사야말로 소림의 원로가 아닌가?
장천림은 어깨를 움츠렸다.
그는 무척 위축된 듯이 보였다. 이때 각현대사는 손을 저어 중년의 중을 만류했다. 이어 인자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시주. 양해하시오. 사실 우리는 한 악귀나한을 쫓아 이곳을 지나는 길이오. 그래서 전부 신경이 날카로와졌소이다. 그러던중 시주 혼자서 이곳을 지나니 의심스러워 그러는 것이오. 그러니 시주께서는 바른 말을 해주어야 하오."
장천림은 그 말에 더욱 겁을 집어 먹은 표정을 지었다.
"예? 악귀나한이오? 어이쿠! 그럼 악마가 나타났단 말입니까?"
그는 벌벌 떠는 시늉을 했다. 중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연극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겁을 먹고 있는 건지 쉽사리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장천림은 안색이 변하여 항의하듯 말했다.
"아니, 이것 보시오. 스님들! 그럼 내가 악귀라도 된단 말이오? 이런 억울할 데가......."
그는 씨근거리며 돌아섰다.
"이렇게 애매한 의심을 받느니 차라리 밖으로 나가겠소. 원, 허기라도 떼울려고 들어왔더니 별 의심을 다 받는군!"
정말이지 그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공연히 소림의 승려들과 다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될 수는 없었다.
슉!
일순 파공성과 함께 그는 날카로운 경풍이 등쪽으로 쇄도해 오는 것을 느꼈다.
"억!"
그는 비명을 질렀다. 옆구리가 뜨끔하면서 동시에 손목의 완맥이 갈고리같은 손에 붙잡히고 만 것이었다.
그의 완맥을 움켜쥔 것은 바로 각현대사였다.
언제 신형을 날렸는지, 어떤 금나수를 사용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솜씨였다. 그러나 장천림은 일부러 대항하지 않았다.
일순 그는 완맥을 통해 뜨거운 기운이 무섭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쿠! 뜨거......! 와앗!"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비명을 질렀다. 실상 각현대사의 무상금강력(無上金剛力)이 그의 혈맥을 조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천림은 일부러 내공을 운기하지 않고 받아 들였다.
"......."
각현대사는 아무 반응도 느끼지 못하자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놓아 주었다.
"미안하오. 시주. 잠시 시험을 해본 것 뿐이오."
만일 장천림의 내공이 그보다 반 단계만 낮았어도 본신의 기운을 속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천림은 자유자재로 진기를 혈도의 일정한 부위에 몰아넣을 수 있었으므로 감쪽같이 위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천림은 털썩 주저앉으며 진땀을 훔쳤다.
"아이쿠! 무슨 늙은 중의 손힘이 그렇게 세오?"
그 말에 승려들은 모두 분노의 표정을 드러 내었다. 각현대사를 늙은 중이라니......?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각현대사는 손짓으로 제자들을 진정시켰다. 그는 소림의 노승답게 매사에 침착한 편이었다.
"그나저나 시주는 이곳에 자주 오시오?"
그는 지나가는 말투로 슬쩍 물었다. 순간 장천림은 머리를 굴려야 했다. 이곳을 터로 잡은 사냥꾼이 이곳을 다니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이곳은 사냥꾼들의 임시 거처였다. 설사 이곳 사정을 아무렇게나 꾸며 말한다고 해도 잠시 지나던 길인 소림사의 중들이 그 진위를 알 리가 없었다.
"그러문입죠. 이곳은 소인과 동료들이 자주 들리는 곳이오. 허허! 뿐만 아니라 이 집도 직접 만든 것인데 당신들이 차지하고 주인을 박대하니 정말 적반하장도 유분수가 아니오?"
장천림은 자신의 임기응변이 적절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중들의 안색에 난처함이 떠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세상사에는 왕왕 뜻밖의 변수가 있는 법이다. 그야말로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마침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장년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사냥꾼의 복장을 한 자였다.
그 자는 들어서며 입을 열고 있었다.
"허허......! 오래 기다리셨겠구려. 스님들. 칡뿌리를 좀 구해왔으니 요기거리는 될 것입니다요. 어? 저 사람은 누구요?"
사냥꾼 사내는 장천림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불행히도 그 자야말로 이 임시 모옥의 주인인 토박이 사냥꾼이었다.
'아차!'
장천림은 일이 어그러졌음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었다.
잘못을 느꼈다면 튀는 것이 제일이다.
펑!
그는 창문을 발로 걷어 차면서 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잡아라!"
"아미타불......!"
호통과 불호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인영이 어지럽게 밖으로 쏘아 나갔다.
장천림은 전력을 다해 신형을 날렸다. 소림사의 중들과 싸우는 것은 피해야 했다. 중과부적일뿐더러 그들과 싸우다보면 무림맹의 포위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는 산으로 달아났다. 평야보다는 훨씬 몸을 숨기기가 쉬우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틀렸다.
애당초부터 지리를 모르는 것이 탈이었다. 게다가 소림 승려들에게는 안내자가 있었다. 바로 토박이 사냥꾼을 앞세워 마침내 장천림의 퇴로를 차단해버린 것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소림의 나한승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더이상의 변명은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전투가 벌어졌다.
차차차창------!
퍼엉! 펑!
싸움은 격렬했다. 처음에는 승려들 중 두 명이 나와 장천림을 상대했다. 그들은 장천림을 얕보았던 것이다.
장천림은 시간을 끌면 끌 수록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독한 마음을 먹고 두 명의 젊은 승려를 거꾸러뜨렸다.
"으악!"
두 승려는 그의 장력을 맞고 삼 장이나 날아가 피를 토했다. 그러자 승려들의 안색이 일변했다.
"아미타불......! 저 자의 무공은 뛰어나다. 어서 포진하라!"
각현의 말에 네 명의 나한승들이 일제히 달려 들었다. 소림사에는 그 유명한 백팔나한대진(百八羅漢大陣)이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소나한진(小羅漢陣)을 펼치기도 한다.
소림의 나한진은 무림개사 이래 단 한 번도 격파된 적이 없는 무적의 진법이었다. 무림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소림의 나한진은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왔던 것이다.
우우우웅!
나한진이 펼쳐졌다. 비록 네 명의 나한승과 각현을 포함하여 오인이 펼치는 것이었으나 그 위력은 가공했다.
장천림은 나한진이 펼쳐지자 주변이 동장철담으로 화한 듯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장력을 날렸으나 그때마다 바다에 돌멩이를 던진 듯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것 같았다.
"아미타불! 무릎을 꿇어라!"
각현대사가 웅후한 불호를 외우며 선장을 휘둘렀다.
위이이잉!
선장이 막강한 경풍을 동반하며 장천림을 몰아쳤다. 장천림은 젊은 중에게서 빼앗은 계도를 휘둘렀다.
카카캉!
불꽃이 요란하게 튕겼다. 순간 장천림은 손목이 시큰하여 하마터면 계도를 떨굴 뻔했다.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늙은 중의 내력이 어째서 갑자기 두 배 이상 강해진 것일까?'
그는 나한대진의 묘용(妙用)을 알지 못했다. 소림의 나한진이 무적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나한진을 펼칠 때 여러 명의 내공력이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각현대사가 떨친 선장의 힘은 다른 네 명의 중년 승려들의 내공이 합일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장천림은 가슴이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혹감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진기가 고갈되어 당한다.'
그는 본래 소림사와는 원한이 없었다. 따라서 되도록 소림의 중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일이 이쯤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살수를 쓰지 않는 한 나한진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는 찬바람을 한 숨 삼키고는 신형을 팽이처럼 회전시켰다.
도세가 일변했다. 그것은 불귀곡에서 익힌 탈혼도법(奪魂刀法)이었다. 일단 탈혼도법이 전개되자 주변이 온통 가공할 도기(刀氣)로 가득찼다.
쐐애애애액---!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두 명의 승려들이 어깻죽지가 잘려 쓰러졌다. 그렇게 되자 진세가 흐트러졌다. 그는 눈부신 신법으로 좌충우돌하면서 나머지 이인의 혈도를 발로 걷어찼다.
"크윽!"
두 명의 중년 승려들이 거꾸러졌다. 바로 그때였다.
"아미타불......!"
웅후한 불호성이 들리며 각현대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선장을 갈라쳤다.
위이이이잉!
천지를 진동하는 파공성과 함께 선장이 태산처럼 그를 휘몰아쳤다.
각현대사의 무공은 중년 승려들의 무공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장천림은 계도를 휘둘렀으나 선장의 웅후한 기세에 밀려 뒤로 세 걸음이나 밀려 나갔다. 그 순간 바닥에 쓰러졌던 승려들이 다시 뛰어 일어나며 합세했다.
싸움은 다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장천림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간신히 각현과 두 승려와의 싸움에서 평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소림의 무학이 왜 무림에서 태산북두로 군림하는지 이번 싸움을 통해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소림이다!'
그는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가혹한 살수를 펼 수도 있었다. 그는 초수가 거듭할수록 소림 무학에서도 헛점이 드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뇌리에는 불귀곡의 비밀무고에 있었던 파소림초(破少林招)라는 무경(武經)에 수록되어 있는 무학이 속속 떠오르고 있었다.
당시 원(元)은 중원의 무림제파를 제압하기 위해 각 파 무학의 장단점을 연구하여 그 파해초식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싸움이 백여 초가 흐르자 마침내 장천림은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위이이잉---!
경력과 회오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는 유유히 옷자락을 날리며 각현과 나한승의 공격권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외쳤다.
"본의 아니게 여러분께 상처를 입히게 되어 유감이오!"
문득 그는 쌍장을 저었다.
퍼퍼퍼펑---!
연이은 폭음이 울렸다.
"헉......!"
여기저기서 신음과 비명이 울렸다.
소림이 자랑하는 나한진이 마침내 와해되었다.
비록 인원이 완전히 갖추어지지는 않았다해도 단 일인을 상대하면서 나한진이 격파되었다는 사실은 강호를 경동시키고도 남을 사건이었다.
두 명의 중년 승려들은 피를 토하며 날아갔고 각현대사도 가슴에 일 장을 얻어맞고 연달아 뒤로 일곱 걸음이나 밀려나갔다.
장천림은 그 틈을 타 홀연히 신형을 날렸다.
"손에 인정을 두었으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오. 한 마디 한다면 난 당신들이 찾는 악마가 아니오! 물론 믿지 않겠지만......"
장천림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각현대사 일행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각현대사는 멍하니 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그는 놀라움으로 가슴이 마구 뛰고 있었다.
그의 나이 육십팔 세.
그는 소림에서도 서열이 십위 이내의 고수였으며 평생동안 한 번도 패배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만에 강호에 나온 직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명의 청년에게 패한 것이다.
그 충격은 실로 큰 것이었다. 게다가 소림이 자랑하는 나한진을 펼치고도 참패한 것이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는 연신 불호를 외우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자위로 한 가닥 눈물이 흘러 내렸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아아! 노납도 이젠 늙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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