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목요일

[무협] 강호무정 제16장 그것은 음모(陰謀)! - 검궁인





제16장 그것은 음모(陰謀)!



각현대사의 방문을 받은 백유성은 짜증이 일고 있었다.

각현대사는 소림의 사대금강승 중 일인이었다. 그의 신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유성은 도무지 그가 달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무림맹에서 한 장의 전문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 전문은 바로 무림맹의 총순감인 공손일도가 보낸 것으로 전문의 내용이 그를 몹시 화나게 만든 것이었다.

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백색마인을 척살하는 일은 일단락되었으나 상관중, 당수문 소협을 죽인 흉수에 관한 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소. 그 일에 동원된 무림맹의 각 파 고수들을 언제까지나 파견할 수는 없으므로 맹주께서는 조속히 매듭짓기를 바라고 계시오. 그로 인해 맹주께서는 각 파의 의견을 수렴하여 철주부의 인원을 보강하여 빠른 시일 내에 사건을 해결하라고 지시하셨소. 따라서 소림(少林)의 원군을 일차로 보내고 뒤이어 총맹에서 장로급

고수를 파견할 예정이니 차후로는 장로들의 지시를 받기 바라오.>

전문의 내용은 명확한 것이었다.

총순감 공손일도는 백유성으로 하여금 장차 이 일에서 손을 떼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이었다.

백유성은 무림맹 내에서 소장파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는 백색마인을 척살한 공로로 무림에서 더욱 부각되고 있었다. 무림맹에서는 그것을 저어하는 인물들이 많았다.

만일 그가 이번 사건마저 해결한다면 더욱 위치가 공고해질 것이 아닌가. 무림맹에서는 그것을 시기하는 자들이 이 사건에서 그가 손을 떼도록 압력을 넣고 있었다.

따라서 총맹에서 장로급 위인을 파견하려는 것은 지휘권을 백유성에게서 빼앗으려는 의도였다.

따라서 백유성으로서는 각현대사 등이 일차 지원군으로 온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울 리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각현대사 일행과 무림맹의 장로가 파견되기 전에 자신이 손으로 사건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더욱 불안한 것은 사인의 흉수가 강호사공자를 노리는 이유였다. 만일 그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진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까지 공들여 쌓았던 탑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었다. 백유성은 내심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으음....... 이렇게 되면 그들이 오기 전에 일을 매듭지어야 한다. 절대로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일이 알려지는 것만은.......'

마침내 백유성의 두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장천림 일행이 철주부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 놈들은 빠른 시일 내에 나를 찾아올 것이다. 굳이 내가 찾지 않아도 말이다. 나는 그저 앉아서 놈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미 만반의 준비는 마쳐 두었다. 그저 놈들이 무모하게 달려들기만 하면 내겐 더욱 좋은 일이고.......'



백유성의 예상은 맞았다.

장천림 일행은 무당산을 떠나 철주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화산에서 허탕을 친 이후 북리웅풍의 행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세 번째 척살 대상을 백유성으로 잡은 것이었다.

그들은 무당산에서도 백유성을 만나지 못한 후 그가 철주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강호의 소문을 들어 알게 되었다. 그래서 행선지를 철주부로 돌린 것이었다.

그런데 무당산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조천백의 변장술로 그들은 몇 번이나 얼굴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적을 따돌릴 수가 없었다. 그 사실에 장천림 일행은 곤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은 크게 의아했다.

왜 그들은 암암리에 추적을 하면서도 정면으로 나서지 않는단 말인가?

일행 중에서 장하영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후후....... 그것은 백가란 놈의 쓸데없는 명예심 때문이다."

"그게 무슨 뜻이야? 좀 쉽게 말하라구."

조천백의 질문에 장하영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놈은 이만저만 비상한 놈이 아니야. 놈은 철저한 계산으로 이미 우리의 능력을 헤아리고 있어. 따라서 놈의 수하들이 우리를 공격해 보았자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래서?"

"놈은 완벽한 승기(勝機)를 잡을 때까지는 감시만 하도록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후후....... 또한 놈은 우리를 잘 알고 있으므로 서두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서두르지 않으면?"

이번에는 석회림이 반문했다.

"놈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어도 우리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지."

그 말에 장천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놈은 화산에서 수하에게 우리가 놈들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겠지. 놈이 지옥에 간다해도 우리가 쫓아 갈 테니 말이다."

장천림은 이를 갈고 있었다. 사실 그는 마음이 조급해져 있었다.

화산과 무당산에서 연이어 두 번이나 허탕을 쳤기 때문이었다.

이때 석회림이 불안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장천림이 차갑게 말했다.

"어떡하긴? 놈이 있는 곳까지 가는 거다."

장하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천림의 말이 맞다. 아무리 변장해 보아야 소용없는 짓이다. 우리의 신분이 노출되었으므로 놈들은 천라지망을 펼쳐놓고 우리의 움직임을 환히 파악하고 있다."

장하영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했다.

"우선은 철주부까지 가자. 그곳에서 머리를 써서 놈의 시선을 벗어나도 늦지는 않아."

사인의 의견은 통일되었다.

사실 그동안 사인은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공연히 길을 우회하기도 하면서 심력을 꽤 낭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행적을 감추는데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철주부까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당도하기로 한 것이었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장천림은 철주부로 향하는 연도의 산에 단풍이 물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내심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소아, 이 가을(秋)이 가기 전에 반드시 너의 복수를 해주마.'



백유성은 전문을 받아 읽고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도통 수하들이 하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같이 모든 것이 허점 투성이에다가 능력부족인 것이다.

전문에는 수하들이 장천림 일행을 완전히 노쳤다는 보고가 들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놈들은 보란 듯이 행적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함정이었다. 그 바람에 수하들이 감시의 눈을 느슨하게 한 것이다. 그 틈을 타 놈들은 교활하게도 감시망을 벗어나 버린 것이었다.

백유성은 도무지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다 잡은 고기를 놓치다니.......'

그는 장천림 일행을 그물에 걸린 고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당한 시기에 그물을 던지기만 하면 잡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힘겹게 지은 밥에 재가 뿌려진 것이다.

"밥통같은 놈들!"

그는 집무실을 떠나 회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아내가 있는 안채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무림인이 아닌 양가의 규수 출신이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오랫동안 능멸해 왔다. 그것은 어쩌면 현숙하고 품위있는 아내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과 반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로 인해 그는 아내를 옆에 두고도 늘 다른 여인과 잠자리를 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이 아내의 귀에 들어가도록 조치해 왔다. 그럼으로써 아내에게 복수(?)를 하는 셈이었다.

그의 아내는 도무지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 그 점이 그는 못견디게 화가 났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의 아내는 그에게 조금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무관심(無關心).

그것은 그에 대한 완벽한 무관심이었다.

그는 언젠가 아내가 보는 앞에서 기녀(妓女)들을 불러 방탕한 행동을 보인 적이 있었다. 적어도 그녀가 최소한의 질투심이라도 보여주기를 바란 행동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아내는 어떠했던가?

그녀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을 뿐더러 옆방으로 가 조용히 비파(琵琶)를 고르지 않았던가?

그 일이 있은 이후로 그는 아내에 대해 더욱 이를 갈게 되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더욱 다른 여인들과의 엽색질에 몰두해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는 아무리 다른 여인들을 품어 보아도 결코 만족을 느낄 수가 없었다. 더욱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다른 여인들과 정사를 하는 중에도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내를 떠올리지 않으면 정사를 완벽하게 치를 수조차 없었다. 그런 사실이 강호사공자의 으뜸이라고 자부하는 그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지금도 그는 별채로 향하고 있었다. 별채에는 최근 기방(妓房)에서 은자 삼천 냥을 주고 사들여 들여앉힌 첩 만향(萬香)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쾌락(快樂).

완벽한 쾌락이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유성도 그런 종류의 인간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지금 침상에 누워 있었다.

"호호......."

만향의 웃음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요염하게 흔들었다. 그녀는 악기(樂器)와 같은 여인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지 알고 스스로 울리는 악기.

과연 만금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악기였다. 백유성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향의 화려한 기술(?)이 그를 쾌락의 세계 속으로 알아서 이끌어 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는 것이 남자를 즐겁게 하는 것이며 무한한 쾌락 속으로 이끄는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혀(舌)의 마술사였다. 그녀는 혀의 기술에 관한 한 세상에서 자신을 따를 여인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으음."

발 끝에서부터 시작한 끈끈하고 녹아내릴 듯한 혀 끝의 애무는 백유성을 아득한 쾌락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는 침상에 누운 채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쾌락을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은.......

만향의 혀에 전신을 맡긴 채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데 있었다. 그와 같은 부류의 인간은 남을 믿지 않기에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다.

그는 남들을 꺾기 위해 수많은 술책을 부려야만 했다. 그런 생활은 언제나 긴장이 팽팽한 생활이었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즐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저 누운 채 만향의 장기인 혀의 마술에 온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만향의 혀는 아주 쉽게 백유성을 달아오르게 했다.

만향은 사나이의 뿌리를 존경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바로 그것이기에. 그러나 그녀에게는 또한 가장 약하고 부드럽고 순하며 말을 잘 듣는 어린아이가 또한 그것이기도 했다.

"호호....... 귀여운 것."

만향은 고양이가 쥐를 놀리듯이 그것을 가지고 놀았다. 그녀가 발휘하는 마술에 백유성은 어린아이처럼 고분고분하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곳에 폭발의 감각이 왔다. 그때야말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만향은 그를 끝없이 받아들였다. 사나이의 힘이 화려하고 힘차게 그녀에게 분사하는 것을 즐기며.......

"......."

백유성은 쾌락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는 시선을 월창(月窓)으로 돌리다가 흠칫 놀랐다.

그림자(影)!

월창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가슴이 섬뜩했다.

"누구냐!"

아무리 급해도 옷은 입어야 했다. 그는 기습을 방비하기 위해 몸을 침상 아래로 굴리며 급히 옷을 찾아 걸쳤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월창에 비친 그림자는 미동도 않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옷을 다 걸치자 밖에서 한 가닥 탄식이 들렸다.

"유성(流星), 여전하군......."

"......!"

백유성은 부르르 떨었다.

"너......너는!"

"정자에서 기다리겠네."

그 한 마디를 남기고 그림자는 사라졌다. 백유성은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결국 나타났군. 후후....... 하긴 언젠가 나타나리라고 생각은 했다.'

그는 입가에 쓰디쓴 기소를 지었다.

'그런데 나타난 시기치고는 별로 좋지 않은 시기로군.'

연못에 달이 떠 있다.

바람이 불자 달이 이지러졌다. 연못 위에 아름답게 축조되어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 안에는 일세의 영명을 지니고 있는 두 청년이 서로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듯 오랫동안 말이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백유성이었다. 그의 앞에는 마의를 입은 기도가 범상치 않은 청년이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강호사공자의 일원이었던 천인검객 북리웅풍이었다. 마침내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북리웅풍이었다. 그는 탄식하더니 백유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성, 상관중과 당수문을 죽인 자는 아무래도......."

백유성은 짐짓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라니?"

"과거 우리가 사천의 백제성을 지날 때 일어났던 일과 밀접한 관련이......."

문득 백유성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

북리웅풍은 흠칫 놀랐다. 그는 백유성이 이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다. 그러나 곧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일은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네. 나는 두 사람을 죽인 자들이 그 일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백유성은 차갑게 말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온 것인가?"

"......."

북리웅풍은 침묵했다. 백유성은 흥! 하고 코웃음쳤다.

"그 일에 설마 자네가 빠져 있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때 자네도 분명 개입했었네."

북리웅풍의 두 눈에 고통의 빛이 떠올랐다.

"후후후....... 어떤가? 기왕 그 사실을 안다면 이곳에 남아 날 돕는 것이? 설마 참회라도 하는 마음으로 앉아서 놈들에게 목을 내 주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 말에 북리웅풍은 장탄식을 했다.

"아아! 유성, 나도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네."

"후후후....... 웅풍. 그건 위선일세. 자네가 할 일을 말해 줄까? 그건 간단해. 이곳에 남아 나와 함께 놈들을 죽이는 것일세. 그 놈들을 죽여야만 그 일을 영원히 땅 속으로 묻어버릴 수 있네."

백유성은 두 눈에 음침한 빛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후후후! 설마 그 일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

"자네나 나나 모두 똑같이 저지른 일이니 똑같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그러나 북리웅풍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고 싶지는 않네."

백유성의 눈에서 성난 빛이 흘러 나왔다. 그는 다소 거친 음성으로 반박했다.

"뭐라고? 그럼 나만이 또 잘못을 저질러야 한단 말인가? 흐흐흐......! 그렇다면 자네는 고고하고 나는 속물이다, 이건가?"

북리웅풍은 더욱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백유성의 반응에 자신이 공연히 이곳에 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이곳에 온 본래의 목적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실상 근본적으로 그는 백유성과는 다른 인품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돌아섰다.

"난 가겠네."

"간다고?"

백유성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오래 전부터 그가 달갑지 않았다. 매사에 그보다 앞서 가고 또한 무림의 평판에 있어서도 그를 훨씬 능가하고 있는 북리웅풍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북리웅풍을 대할 때마다 위축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못견디게 싫었다. 그는 북리웅풍의 수양과 기품을 따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틈만 나면 그의 약점을 잡고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북리웅풍에게는 약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위인이었던 것이다.

백유성은 끈질기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한 번 마음 먹으면 무서울 정도로 집념이 강한 위인이었다. 마침내 그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강호사공자가 모임을 갖게 된 자리였다.

백유성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두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술에 강력한 최음제(催淫劑)를 탔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북리웅풍을 비롯한 삼인은 술을 마신 것이었다.

백제성에서 두 명의 소녀를 겁탈하도록 일을 꾸민 것은 처음부터 그의 완벽한 계획이 빚은 결과였다. 세 사람이 취기가 오르자 강렬한 욕정을 느끼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마침 걸려든 것이 금문장의 금지옥엽인 백가소였다.

백유성은 최음제가 혼합된 술을 마시고 정욕에 눈이 먼 삼인에게 백가소와 그녀의 시비를 던져 주었다. 마치 굶주린 사자우리에 토끼를 넣은 것이나 같은 격이었다.

애당초 목표는 바로 북리웅풍이었다. 그는 평소에 고고한 척 하는 북리웅풍이 욕정에 눈이 멀어 선량한 소녀를 겁탈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무서운 희열을 느꼈다.

백유성은 정신없이 소녀를 겁탈하는 북리웅풍을 바라보며 마음껏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보아라.......

너도 개나 다름없는 속물(俗物)이 아니더냐?

후후후! 북리웅풍! 너라고 별 수 있느냐!

그런데 그가 느낀 희열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다. 상관중이나 당수문은 당시의 일을 곧 웃어 넘기며 잊어 버렸다. 그들은 본래부터 여색을 밝히는 작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리웅풍만은 달랐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직후 화산으로 돌아가 폐관해 버린 것이었다.

'빌어먹을 놈! 네가 고고하다면 얼마나 고고하다고!'

북리웅풍의 폐관 소식을 듣고 백유성은 내심 이를 갈고 있었다. 어쩐지 그를 꺾었다는 기분보다는 도리어 무시당한 기분이 더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력한 경쟁자 하나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로 그는 강호사공자의 우두머리로 행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오직 그만의 비밀이었다. 실로 무서운 음모가 아닐 수 없었다.

'흐흐......! 북리웅풍, 넌 죽을 때가지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백유성은 입가에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북리웅풍의 돌아선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이 기울고 있었다.

북리웅풍은 이곳이 더이상 머물러 있을 곳이 못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돌아선 채 말했다.

"애당초 잘못은 우리에게 있었고...... 그들은 옳은 일을 하는 것 뿐이네. 그런데도 죄를 범한 우리들은 정의의 편에 있고 응징을 하려는 그들이 무림의 적도(敵徒)가 되다니......."

북리웅풍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 세상 일이 이렇게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인 줄 알았다면 난 애당초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걸세."

그 말이 끝이었다.

휘익!

북리웅풍은 신형을 날려 달빛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백유성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의 입가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군자(君子)인 척 하는 놈!

언제까지 네 놈의 군자연이 계속되는지 두고 보마!

그는 이를 부드득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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