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목요일

[무협] 강호무정 제17장 마지막 목적(目的) - 검궁인





제17장 마지막 목적(目的)



백리진강은 몹시 기분이 좋았다.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만선(滿船)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장강에 사는 어부들은 인심이 좋았다. 그가 타지인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고기잡이에 참여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백리진강은 며칠 동안 장강을 오르내리며 고기잡이를 하면서도 줄곧 환사금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간혹 그는 내심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아....... 나도 머지 않아 아버지가 된다!'

그 얼마나 가슴벅찬 일인가?

그는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비록 구사일생으로 건진 목숨이었으나 환사금과 함께 영원히 이곳에서 정착할 자신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도 피맺힌 원한이 뇌리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내상만 완치된다면 언제고 다시 뛰쳐나가 무림맹의 인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살인귀로 화할 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환사금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마음은 미묘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혈육(血肉).

그는 한 번도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도 혈육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 사실은 백리진강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뻐해야 할 지, 아니면 난감해야 할 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환사금의 배가 조금씩 변화를 보일 때마다 그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희열이 싹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밤이면 그녀의 동그란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귀를 대고 고동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직은 임신 초기였으므로 이렇다할 징후는 없었으나 느낌만으로도 그는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다.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벅찬 감격이었다.

그래!

내게도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 아들은 결코 나와 같은 삶을 걷게 하지는 않으리라!

내 아들은 이곳 장강 어귀에서 평생 고기나 잡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평화롭게 살게 하리라!

백리진강은 그렇게 상상하며 남몰래 눈물짓곤 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결정할 수 있었다. 지난 날의 피보라로 점철됐던 인생을 깨긋히 청산하고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

나룻터에 배가 도착했다.

백리진강은 언제나처럼 환사금이 마중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약간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으나 곧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몸이 불편한 모양이군. 하긴....... 아이를 가졌으니 함부로 나다니지 말아야지.'

백리진강은 어구를 챙겨 곧장 매화림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에도 그는 조급한 마음이 들어 발걸음을 종종걸음치고 있었다.

한 시라도 빨리 오두막집으로 가 사랑스러운 환사금을 껴안아 주고 싶었던 것이다.

'후후, 깜짝 놀랄 걸? 이번 고기잡이에서 꽤 많은 돈을 벌었거든. 그 돈이면 당신의 새옷 한 벌과 아기가 입을 옷 몇 벌은 충분히 살 수 있다구.'

백리진강은 내심 그렇게 중얼거리며 매화림 사이의 길로 접어 들었다.

매화림 사이의 길은 아득한 꿈길처럼 굽어져 있었다. 그 길 끝에 자리잡은 아담한 오두막집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오두막집은 비록 작았으나 그와 환사금, 그리고 장차 태어날 아기가 함께 살기에는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매화가 만발하면 꽃잎을 따서 매화주를 담으리라. 매실(梅實)이 열리면 열매로는 매실주를 담고...... 눈 내리면 매화숲을 거닐며 눈과 어울린 매화 속에서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리라........

백리진강의 걸음은 더 바빠졌다. 마침내 구비진 길을 돌자 그의 눈에 오두막집이 들어왔다.

언제나 처럼 오두막집은 조용하기만 했다. 이곳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하루 종일을 가야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바람에 실려오는 달콤한 매화향기뿐인 곳이었다.

예전에는 적막한 곳이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꿈같이 달콤한 곳이었다. 환사금과 부부의 의식을 치른 이후로는 매화가 더욱 만개하고 향기도 더욱 짙어진 것 같았다.

'사금! 내가 왔소. 후후....... 당신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바느질? 아니면 나를 위해 요리를 하고 있는 거요?'

이때였다. 백리진강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전 같으면 매화림으로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새떼가 날아오르는 것이 예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매화림을 거의 지나왔는데도 한 마리의 새도 보이지 않질 않는가?

오늘따라 숲은 너무 조용했다.

백리진강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는 내심 자신을 나무라고 있었다.

'내가 무슨 방정맞은 생각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부인하며 오두막집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환사금이 주방에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주방의 문이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환사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분명 그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환사금은 반가운 표정을 짓기는커녕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금! 내가 왔소."

그는 손을 들며 외쳤다.

그 순간 환사금의 안색이 크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애당초 그녀는 그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비로소 발견하고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는 것이었다.

"사금, 왜 그러오? 어디 아프오?"

백리진강은 부드럽게 말하며 주방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환사금이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찢어질 듯한 음성으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달아나요! 진강!"

"......!"

백리진강은 충격을 받았다.

달아나라니? 왜? 무엇 때문에?

생각은 짧았다. 그러나 그 생각을 이어갈 시간도 그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네 명의 사나이가 벼락같이 뛰쳐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의해 환사금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저만치 나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환사금은 그를 향해 애처롭게 부르짖고 있었다.

"달아나요! 진강......."

환사금은 저만치 바닥에 뒹굴면서도 그를 향해 애절하게 외쳐댔다.

"어서 달아나요! 어서......!"

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 달아나야 한다!

백리진강은 사태를 직감했다. 그에게 무서운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우박같은 암기가 사방에서 그를 향해 쏘아져 왔다.

슈슈슈슈슛---! 쏴아아아아!

동시에 방금 전 그가 지나왔던 매화림 속으로부터 수십 명의 인영이 쏘아 나왔다. 땅에서, 바위 뒤에서, 나무 뒤에서....... 겉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이던 주변으로부터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에 달하는 인영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와아아아앗!"

백리진강은 피를 토하듯이 부르짖었다. 이미 그의 전신에는 십여 개의 암기가 고슴도치처럼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그나마 빨리 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뛰었다.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자의 골통을 바수고 뛰어넘었다.

내상은 아직도 완쾌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혼력을 다한 그의 공격은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는 상대방의 병기를 빼앗아 처절하게 휘둘렀다.

파츠츠츠츠츳!

"크아악---!"

눈 앞에 걸리는 자는 상대가 누구든 확인하지도 않고 베어 버렸다. 아니, 그는 사람을 베는 것이 아니라 잡초를 베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뜨겁고 역한 선혈이 온 몸에 튀는 것도, 자신의 몸에 무수한 상처가 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베고, 죽이며 달아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득 그가 달아난 뒤쪽으로부터 한 가닥 처절한 비명이 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귀에 익은 환사금의 음성이었다.

'사금......!'

백리진강은 피를 토하듯이 부르짖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 하였던가? 백리진강이 환사금의 경고를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이라고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살아야 한다!

오직 그 사실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오직 일념으로 살기 위해 손발을 움직였고, 앞만 바라보며 달아났다.

환사금이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는 지, 그녀의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내상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 그는 불과 삼 성 정도의 공력밖에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적과 싸운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

술.

술이란 참으로 이상한 물건이다.

때로는 한 잔 술에 얼큰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아무리 마셔도 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백리진강은 계속 술을 마셔댔다. 그는 잊고 싶었다. 모든 것이 악몽(惡夢)이었다. 그는 모옥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이후 환사금이 염려되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백 명의 매복을 뚫고 그녀를 구해낼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탈출하다가 새로 입은 상처는 다시 그의 상세를 악화시켰다.

그는 환사금이 있는 오두막집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다만 먼 발치에서 매화림이 있는 곳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기를 보름여나 하였을까?

매화림 일대를 철통같이 지키던 무사들이 철수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보란 듯이 환사금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

백리진강은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서 그녀가 철창이 달린 수레에 탄 채 끌려가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실로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그녀를 구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몸을 나타내기만 하면 수백 명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여 협공을 당할 것이다.

그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눈 앞에서 환사금이 멀어져가는 것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사라진 후.......

늘어나는 것은 술뿐이었다. 그는 하루종일 술에 파묻혀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짙은 패배감에 휩싸여 있었다.

복수......?

후훗! 다 쓸데없는 일이야. 자신의 계집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복수는 무슨 복수......?

ㅋㅋ! 너는 비겁한 놈이야. 천하에 비겁한 놈이라구!

백리진강은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환사금을 사랑했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제 도저히 그녀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가고 있었다. 중상을 입은 데다 그 이후로도 몸을 돌보지 않았으며 거기다 연일 마셔댄 술로 인해 그의 내상은 거의 치유불능의 상태까지 치닫고 있었다.

백리진강은 시간이 흘러갈 수록 점점 더 절벽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침내 그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그래.......

내가 세상에 태어나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면.......

바로 그녀를 구하는 일이야!

마침내 백리진강은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또다른 피의 예고였는지도 몰랐다.



장천림 일행은 내향(內鄕)에서 십 리쯤 떨어진 지역에 와 있었다.

철주부는 내향의 철주산에 있었다. 결국 그들은 긴 여행을 한 셈이었다. 그들이 이곳까지 오는 동안 걸린 시간은 실로 중원의 반을 돌 만큼 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점점 가까워져 이제는 코 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장천림을 비롯한 사인은 점차 마음이 비장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철주부에 가까이 올 수록 일대가 천라지망(天羅之網)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유성은 그들을 척살하기 위해 완벽에 가깝도록 포진해 놓은 것이었다.

석회림과 주천백은 면밀히 적정(敵情)을 살폈다.

그들은 철주부 일대에 적어도 칠백인 이상의 무림맹 고수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로 가공할 숫자였다. 아니, 숫자만 가공한 것이 아니라 그들 무사의 무예 또한 정예고수라는데 문제가 있었다.

일단 그들 사인의 행적이 노출되기만 하면 순식간에 절망적인 상황으로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행동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백유성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함께 행동한다면 눈에 띄기 십상이었다.결국 그들은 변장을 한 상태로 절대로 이인 이상 모이지 않기로 했다.

장천림과 장하영, 석회림과 조천백이 한 조를 이루어 따로따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암기(暗器)를 나누어 적당한 장소에서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그들이 내향 부근에 당도한 것은 구월 초하루였다.

이때부터 그들은 백유성을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실패란 있을 수 없었다.

만일 실패한다면 그것은 모두의 죽음을 의미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인은 결국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시일이 흐를 수록 복수할 확률이 적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무림총맹에서 자꾸만 정예고수들이 모여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부터였다.

결국 그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그들은 장하영의 의견을 쫓아 내향, 그것도 철주부에서 가장 가까운 객점에 상인으로 변장을 하고 모였다.

이른바 등하불명(燈下不明)의 헛점을 노린 것이었다.

"뭐? 정면돌파?"

장하영의 말에 모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뜻밖의 말이 쉽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정면돌파라니 말이나 되는 이야긴가?

기라성같은 무림맹의 고수들이 운집해 있는 철주부를 정면돌파하겠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하영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술 한 잔을 비운 후 담담히 말했다.

"그래. 사실 우리에겐 달리 선택의 길이 없어. 오직 그 방법만이 최선의 길이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하영. 다른 방법이 없을까?"

조천백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장하영은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일행의 지낭(智囊) 역할을 해왔다. 삼인은 그가 세우는 전략에 따라 움직였고 그의 정보 분석에 따라 행동해 왔다. 그가 결정한 방법은 모두가 옳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장하영이 내린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것은 최선의 길이 아니라 최악의 길인 것 같았다. 조천백과 석회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그러나 장천림은 처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장하영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가 보여준 여러 가지 일들을 미루어 그가 결코 허튼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마침내 장천림은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 길이 최선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장하영은 그를 바라 보았다. 문득 그는 장천림이 그를 의심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깊은 신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빛을 통해 알았다.

장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백유성은 상관중이나 당수문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를 평범하게 보면 곤란해. 그 자의 지략은 무림맹에서도 소장파의 세력 중 중심이 될 정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돼."

"그래서?"

"게다가 우리는 이미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백유성은 우리의 공격을 예측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 상대를 놓고 잡다한 술수를 써 보아야 도리어 사전에 그가 쳐놓은 거미줄에 스스로 날아들어 걸리는 부나방 꼴이 되기 십상이다."

"음."

장천림은 신음을 흘렸다. 거기까지는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조천백, 석회림도 이젠 조용히 장하영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병법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허허실실(虛虛實實)이다. 허 속에 실이 있고 실 속에 허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의 모든 행동을 예측했다면 우리는 결코 그가 바라는 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조천백은 궁금한 듯이 반문했다. 그도 차츰 장하영의 말에 빨려들고 있었다.

장하영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가 무엇을 원하겠느냐? 우리가 온갖 머리를 짜내 철주부를 습격하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그, 그야 그렇겠지."

"우린 고작 네 명에 불과하고 그들은 천 명에 가까운 숫자다. 그러니 우리가 설마 정면으로 돌파하리라고는 그도 전혀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바로 허허실실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 그렇긴 하지만......."

조천백은 말 끝을 흐렸다. 이론적으로는 장하영의 말이 틀린 데라곤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용담호혈인 철주부에 정면으로 뛰어든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

방 안의 삼인은 침묵했다. 실상 병법이라면 장하영이 전문가였다. 그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이미 많은 생각 끝에 나온 결론일 것이다.

마침내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조천백이 확인해 둘 것이 있다는 듯 물었다.

"그러나 경비가 삼엄한데 어떻게 뚫고 들어가지?"

장하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홍수는 흙으로 막고 군사는 장수로 막는다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는 법이다."

"......?"

"철저한 계획을 세우면 된다. 남은 것은 시간이다. 시간 싸움에 승부를 걸면 된다."

"시간 싸움?"

일행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잘 들어라. 그것은 바로......."

이윽고 장하영은 자신이 세운 계획안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삼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홍무(洪武) 15년 9월 11일.

두두두두두!

긴장감이 감도는 철주부(鐵柱府)의 정문에 한 필의 오추마가 당도했다.

그 말은 한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천리준마(千里駿馬)로 보통 사람은 평생 가야 구경조차 해보지 못할 것 같았다.

마상에는 금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타고 있었다. 그는 말에서 뛰어 내리더니 뚜벅뚜벅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철주부의 정문은 만인을 압도하듯 컸다. 대문 양옆으로는 석사자가 버티고 선 채 굽어보고 있었다. 또한 좌우로 열두 명의 경비무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당금 무림에서 철주부는 이미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대부분 무림인이거나 신분이 확실한 인물들이었다.

"......."

금포 중년인은 천리준마에서 내린 후 철주부의 높이 솟은 돌계단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처음부터 그는 추호도 망설이거나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뚜벅뚜벅!

돌계단은 높았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대문이 있는 대리석 바닥에 오를 수 있었다.

마침내 계단을 다 오르고 정문 앞에 당도했을 때 중년인의 좌우로 열두 명의 경비무사들이 둘러쌌다.

중년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뇌리에는 누군가의 당부가 다시 한 번 떠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우연히 얻게 된 무림총맹의 영패(令牌)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나타낼지는 나도 모르네. 하지만 천운이 따른다면 자네는 무사히 철주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일세.

"멈추시오! 어디서 오신 분이오?"

경비 무사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중년인은 그를 바라 보았다. 몹시 오만한 눈빛이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 신분을......."

무사는 흠칫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눈 앞에 하나의 금빛 찬란한 물고기 모양의 영패가 내밀어졌던 것이다.

"금어령(金魚令)!"

무사는 경악하며 부르짖었다. 이어 그는 급히 한 쪽 무릎을 꺾으며 예를 표하는 것이었다. 그가 예를 표하자 나머지 십일인의 무사들도 일제히 똑같은 예를 표했다.

중년인은 거만하게 무사들을 쓸어보며 물었다.

"백대협은 안에 계신가?"

우두머리 무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금어령은 무림총맹의 요직에 있는 자만이 지니고 다니는 영패였다. 그는 평생 동안 금어령을 오직 단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금어령은 존귀한 신분을 지닌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관례에 따르면 상대방은 아무리 신분이 높다해도 일단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했다.

그런데 금어령을 소지한 이 중년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는 일체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로 백유성이 있느냐고만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 어디서 오신 분이신지......?"

그는 간신히 더듬거리며 물었다.

"총맹에서 왔네."

간단한 대답이었다.

"총맹의 어떤......"

그러나 무사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중년인이 무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 보았기 때문이었다.

"수, 순찰 중이십니다."

"언제 쯤 돌아오나?"

"어, 얼마 후면......"

무사는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무림총맹에서 온 인물이라면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고무상한 신분일 것이다. 그는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일단...... 안으로 들어 가십시오."

무사는 얼른 길을 열었다. 중년인은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그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높이 솟은 대문을 넘어 서면서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백유성이 순찰을 도는 시간에 자네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운이 좋다면 그의 집무실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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