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목요일
강호무정 제3장 추적(追跡) - 검궁인
제3장 추적(追跡)
①
홍무(洪武) 8년 11월 2일.
기루(妓樓) 춘강루(春江樓)는 초저녁부터 큰 손님을 맞았다.
그들은 불과 삼인이었다. 그러나 보통 손님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곳 무협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노예 사냥꾼 집단인 것이다.
이들과 기루와의 사이에는 특별히 깊은 관련이 맺어져 있었다. 이른바 수요자와 공급자라는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노예 사냥꾼들은 통상 기루에서 씀씀이가 컸다. 기루 또한 이들을 귀빈으로 접대하는 것이 상례였다.
"으하하하하......!"
"호호호......"
기루의 내실은 춘경(春景)이 아니라 온통 도화경(桃花景)이었다.
세 명의 중년 사나이들은 화려한 기루의 내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다섯 명의 기녀들을 데리고 놀고 있었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음담패설을 주고 받으며 손으로는 완전히 발가벗긴 계집들의 은밀한 곳을 거침없이 더듬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술상 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색다른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명의 기녀가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누워 있었다. 안주감인가? 아니면 이름하여 여곡주(女谷酒)라고 이르던가?
계집의 두 다리는 세워진 채 맞물려 있었고, 그 삼각 비역에 호박빛의 술이 담겨 있었다. 커다란 유방의 계곡 사이에는 싱싱한 생선회가 드문드문 놓여져 사내들의 젓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실로 이같은 황음한 광경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사나이들은 유방 위에 얹혀진 안주를 먹고, 여인의 꼭 다물려진 은밀한 부위에 고인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키들거리거나 지껄여지는 것은 전부가 음담패설이었고, 음탕한 그들의 손은 쉴 사이없이 자신들의 무릎에 앉아 있는 계집들의 비곡을 드나들고 있었다.
밖은 제법 카랑카랑한 바람이 불고 있었으나 실내는 한 여름처럼 뜨거웠다.
그런데.......
그들이 광오한 환락에 젖어있는 사이 창문 틈으로부터 희미한 연기가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연기는 은밀하게 실내의 바닥에 깔리며 은은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잠시 후 사나이들은 물론이려니와 기녀들도 눈꺼풀이 천 근처럼 무거워짐을 느끼며 스르르 모로 쓰러지고 있었다.
삐......익.
창문이 열리며 한 명의 흑의청년이 들어섰다. 그는 바로 장천림이었다.
②
질문의 횟수는 가능한 한 적을 수록 좋고 위협은 확실히 해야 한다. 더불어 머리를 쓸 여지를 남겨주면 안 되고 무조건 공포에 질려 묻는 말에만 대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끄아아아악......!"
한 사내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그의 사지는 통째로 뜯겨 나갔다.
"커어억...... 컥!"
또 한 명, 그는 두 눈이 닭다리에 찔려 있고 종내에는 입 속에 구운 오리 한 마리가 통째로 처박혀 숨이 막혀 죽었다.
"으으...... 으아아......!"
혼자 남게 된 자는 공포에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동료 둘이 무참하게 죽은 것을 보았다.
머리에 털난 이후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그도 잔인한 짓이라면 취미삼아 해오던 위인이었으되, 이런 일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가해자 쪽이 아니라 피해자 쪽이 될 줄이야.
장천림은 무표정했다.
그는 구석에 몰려 와들와들 떨고 있는 기녀들을 손짓해 불렀다.
"젓가락."
기녀들은 처음에는 멍한 표정이었으나 곧 후다닥 상 위에 널려 있던 젓가락을 가져왔다. 장천림은 모두 세 벌의 젓가락을 손에 쥐었다.
"저쪽으로 가라."
"으흐흐......."
사나이는 눈물 콧물까지 흘리면서 정신없이 장천림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윽고 그가 벽에 기대어 서자,
슉!
한 개의 젓가락이 날아갔다. 빛살같은 속도였다.
"큭!"
사나이는 비명을 질렀다. 젓가락은 그의 팔목을 관통하여 벽에 박혔다.
"내게는 아직도 다섯 개의 젓가락이 있다. 모두 던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슉!
장천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다른 쪽 팔목에 젓가락이 박혔다.
"크윽! 제발...... 왜 그러는지 말해 주오....... 제발......"
사나이는 해룡파의 소두목이었다. 그는 도대체 장천림이 왜 이런 모진 고문을 가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무엇인가 알아야 대답을 할 것이 아닌가?
"나이는 십육 세. 이름은 백가소, 백의를 입었으며 가슴에는 붉은 장미가 수놓아져 있다."
"으아악!"
또 하나의 젓가락이 이번에는 발목에 꽂혔다.
"어디 있느냐? 너희들이 납치했다. 장소는 백제성 부근의 야산......."
슉!
"아아악!"
왼쪽 발목에도 또 하나의 젓가락이 박혔다. 그는 이제 사지를 벌린 채 벽에 붙어 있는 꼴이었다. 장천림은 수중에 두 개의 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이번에 그가 노려보는 곳은 사나이로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만일 그곳을 향해 날아간다면 사나이는 평생 다시는 계집을 안을 수 없게 되리라.
"으으으...... 봐, 봤소! 그...... 말씀하신 인상의 소녀는...... 수왕단(水王團)으로 넘어갔습니다요!"
"수왕단?"
"예...... 예! 황하(黃河)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자들입죠....... 예....... 분명히 그런 소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우...... 우리가 납치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다만...... 야산에 버려져 있는 소녀를 발견한 것밖에는...... 미, 믿어 주십시오......."
슉!
"카아악......!"
다섯 번째의 젓가락은 사나이의 소중한 그곳에 꽂혔다. 이로써 그는 다시는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 아닌가? 그는 애원의 눈빛으로 제발 목숨 만은 살려 달라고 빌었다.
슉!
마지막 젓가락은 애원하는 사나이의 목구멍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③
대황하(大黃河).
수만 년을 쉬임없이 흘러온 황하의 물은 언제나 탁하다.
도도히 흘러내리는 그 흐름 속에 한족의 영욕이 있으며, 중원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
밤(夜). 흐르는 강물 위에 범선(帆船)이 떠있다.
범선 안에서는 축제라도 벌어진 양 쉴새없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횃불과 불빛이 강상까지 환하게 물들이고 있다.
이 범선은 황하 유역에서는 모양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유명한 범선이다. 황하 일대를 오르내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떤 조직의 범선인 것이다.
자시(子時)쯤 되었을까?
쏴아아.......!
문득 물결이 갈라지며 사람의 머리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범선의 후미진 쪽이었다.
"......."
사나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범선을 살폈다. 장천림이었다.
잠시 후 그는 경비경이 선미를 지나간 틈을 타 범선 위로 가볍게 뛰어 올랐다. 그의 동작은 민첩하기 그지 없었으며, 일 점의 소리도 내지 않았다.
뱃전에 소리없이 오른 그는 갑판의 잡동사니를 쌓아둔 뒤에 몸을 숨겼다. 바로 그때,
"헉........ 허헉.......!"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장천림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갑판 위의 풍경을 보라.
네 명의 험상궂게 생긴 장한들과 네 명의 여인들이 뒤섞여 혼음(混淫)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황하 가운데 떠있는 배 위라고는 하지만 지붕도 벽도 없는 갑판 위에서 혼음을 하다니 실로 낯뜨거운 일이었다. 그로 미루어 범선에 타고 있는 인물들이 어떤 부류인지 능히 짐작이 갈 일이었다.
장천림은 뱃전을 소리없이 이동하여 한 바퀴 돌았다. 정세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실로 뱃전에는 온통 광기(狂氣)에 가까운 난잡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십 명의 장한들이 술을 마시며 여인들과 난교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배 위의 전망대 위에 보초가 있었다. 단지 그 보초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엉망으로 취해 있었다. 따라서 보초의 눈 만 피한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있었다.
장천림은 갑판 위를 모두 살폈으나 목적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없다. 하긴 갑판 위에 나와 있는 자들은 모두 수왕단의 졸개들 뿐이다.'
수왕단(水王團).
그렇다. 그는 황하 일대를 주름 잡는다는 수왕단의 범선으로 잠입한 것이었다.
잠시 후 장천림은 선실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범선은 꽤 규모가 컸으므로 여러 개의 선실이 있었다.
그는 선실 하나 하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선실은 갑판 위에 있는 작자들보다는 비교적 신분이 높은 두목급들의 방인 듯 했다.
그러나 대충 선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은 갑판 쪽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 역시 선실 안에서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계집들을 희롱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장천림의 가슴 속에는 살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인신매매를 하는 작자들.......! 아무 여인이나 잡아 욕심을 채우며 환락에 취해 있군. 세상에 살아있어야 아무런 가치 없는 놈들........'
그러나 무작정 살인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목적은 백가소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가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가장 크고 호화로운 선실에 당도했다. 선실 안에는 수왕단의 단주로 보이는 사십대의 중년거한이 커다란 호피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는 네 명의 여인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 네 명의 여인들은 밖에 있는 어떤 여인들보다도 더 아름답고 젊은 미녀들이었다. 한결같이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선실 안의 풍경은 그야말로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중년거한은 제왕이 부럽지 않은 환락을 만끽하고 있었다.
여인들 중 몇은 거한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몇은 거한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었다. 거한은 나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털투성이의 팔을 뻗어 한꺼번에 두 여인들을 안고 여기저기를 주무르고 있었다.
실로 음탕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장천림은 서슴없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누....... 누구냐?"
호피의자에 앉아 있던 거한은 갑자기 예고도 없이 들어선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장천림은 태연했다. 그는 대꾸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 발로 진수성찬으로 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져 있는 주안상을 밟았다.
우지끈!
주안상은 대뜸 한가운데가 부러져 주저 앉았다.
"무...... 무슨 짓이냐?"
거한은 퉁방울같은 눈을 부릅뜨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으....... 헉!"
그는 헛바람을 들이켜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장천림의 발이 그의 콧등을 밟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장천림의 발은 언제 어떻게 날아갔는지 그의 콧등을 정확히 짓밟았다.
거한은 과연 수왕단주였다. 그는 황하 유역을 제왕처럼 군림하는 작자였고 평생을 엽색질과 방화, 살인으로 보낸 작자였다. 그런데 이 갑작스런 사태에 완전히 주눅이 들어 버렸다.
장천림은 한 번 보고 그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겁이 많은 작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철검을 뽑지도 않은 채 검집째 그의 목을 눌렀다.
"으....... 캐액!"
목젖이 눌려지자 수왕단주는 호흡이 막혀 캑캑거리며 사색이 되고 말았다.
"나이는 십육 세, 이름은 백가소, 입은 옷은......."
그러나 장천림은 그만 입을 다물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가 끝까지 다 묻기도 전에 수왕단주는 그만 기절을 해 버린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하반신이 푹 젖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수왕단은 덩치만 컸을 뿐, 그야말로 겁장이였던 것이다.
"사내 값을 못하는 놈이군........"
장천림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겉보기와는 다른 위인이 있었다. 수왕단주같은 자가 바로 그런 위인이었다.
장천림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런 작자가 인신매매를 하는 집단의 영수일 줄은 정녕 뜻밖이었다.
이때였다.
"저어........ 나리."
".......?"
장천림은 흠칫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 음성은 구석으로 물러나 쪼그린 자세로 숨어있던 여인들 중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그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있었다.
"저어........ 혹시 목에 작은 점이 나 있는 그 소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장천림은 전신을 떨었다.
"맞소. 보았소?"
여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 가량 되어 보였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풍만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가슴이 유난히 크고 허리는 대조적으로 가늘었으며 얼굴도 갸름하고 요염한 여인이었다.
피부가 투명한 것으로 미루어 과거에는 분명 신분이 높은 집안의 규수인 듯했다.
"백소저를 말씀하시는군요. 아,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곳에 없답니다."
장천림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찾았는가?
그런데 이제서야 비로소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다급히 물었다.
"그럼 어디에 있소?"
"백소저는........"
여인의 말은 이러했다.
백가소.
그녀는 잡혀온 여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수왕단주인 위한림(韋韓林)의 눈에 들어 그의 수청을 들어야 했다.
위한림은 본래 계집에게 싫증을 잘 내는 위인이었다. 처음에 그는 백가소에게 반해 한동안 다른 여인들은 일체 접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백가소가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고집이 세어 그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한림같은 위인은 계집질을 밥먹듯 해왔으므로 도리어 뜻대로 응해주지 않는 여인에게 더 관심이 끌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결국 백가소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한동안 협박하고 달래고 해도 육체의 문을 열지 않던 그녀도 마침내 굴복을 하고만 것이었다.
위한림이 그녀에게 미약(媚藥)을 강제로 복용시킨 것이었다. 미약은 한 번 복용하게 되면 신지를 잃으므로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미약은 중독성이 있다. 처음에는 소량을 먹이고, 차츰 그 양을 늘려가게 되면 종내에는 미약을 하루라도 복용하지 않으면 미쳐버리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백가소는 한 달 이상 미약을 복용하게 되자 마침내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녀는 고고하던 자존심도, 순결한 여인으로서의 수치감도 다 사라져 버렸다. 누우라면 눕고 기라면 기었다. 핥으라면 핥았고 춤을 추라면 추는 애욕의 노리개가 되고 만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던 위한림도 마침내 서서히 싫증을 내게 되었다. 그녀에게 더이상 흥미가 없어진 것이었다.
중독이 심해진 그녀는 더이상 예전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백가소가 아니었다. 위한림은 그런 그녀를 자신의 수하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의 수하들은 백가소를 실컷 농락한 뒤 점점 중독증세가 심해진 그녀를 또다시 하북(河北) 연변에 있는 한 사창가에 팔아 넘겼다는 것이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으아아아아!"
장천림은 격분하여 울부짖는 듯한 비명을 발하면서 철검을 내리쳤다.
퍼어어억!
검집째 떨어진 철검 아래 혼절해 있던 수왕단주 위한림은 그 유난히 커다란 골통이 두부가 으깨어지듯 박살나 황천으로 가고 말았다.
"뭐, 뭐냐?"
"단주님의 음성인데......?"
잠시 후 비명을 듣고 선실로 우르르 뛰어드는 작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선실 안에 벌어진 풍경에 그만 아연실색하고 있었다.
죽음의 범선(帆船).
겉으로는 한가롭고 평화롭게 황하 한가운데 떠 있는 범선이었으나........ 밤이 이슥해지고 새벽 여명이 터올 때까지도 범선에서는 죽음의 비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슉! 슈욱!
장천림은 철검을 휘둘렀다. 그의 철검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정확히 한 놈의 목이 끊어져 잘린 채 갑판 위에 뒹굴곤 했다.
그의 마음 속에 자비심은 한 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이 범선 안에 살아 숨쉴 자격이 있는 놈은 한 명도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는 쉬지 않고 철검을 휘둘렀다.
피........ 피........ 피........
여인들은 한 선실 안에 뭉쳐 벌벌 떨고 있었고........
이백여 명에 가까운 수왕단의 졸개들이 모두 죽은 것은 새벽 여명이 온통 시체로 뒤덮인 갑판을 비칠 때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엇인가 물 속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을때, 겁에 질린 채 선실 안에서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 보던 담이 큰 한 여인은 볼 수 있었다.
밤새 지옥도를 연출했던 흑의청년이 입에 한 자루의 철검을 문 채 유유히 황하를 헤엄쳐 건너가는 것을.
④
며칠째 내린 눈으로 대지는 온통 건곤일색(乾坤一色)이다.
눈........ 눈........ 눈.
눈은 천지를 오직 하나의 색(色)으로 뒤덮었다.
황혼(黃昏)이 진다. 황혼은 눈부신 설지를 점차 핏빛으로 채색해가고 있었다.
이곳은 황하 연변. 하북(河北)의 평원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장천림은 묵묵히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고 있었다.
그에게는 고독한 여행자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눈길을 들어 멀리 바라다보이는 나룻터에 밀집되어 있는 군락을 보고 있었다.
그곳은 나룻터의 조악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선창이었다.
빈민들이 우글거리는 곳. 그곳은 더럽고 누추하며 온갖 추악한 군상들이 범벅을 이루어 사는 곳이다. 과연 그런 곳에 백가소가.......?
장천림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벌써 여러 곳을 전전했다. 수왕단의 범선에서 한 여인이 일러준 대로 그는 백가소가 팔려 갔음직한 사창가는 빠짐없이 뒤졌다.
없었다.
아니, 어떤 곳에서는 그녀를 알고 있는 자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들의 말은 그녀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 갔다는 것이었다. 다시 백가소가 팔려갔다는 사창가를 전전하기를 그 몇 번이던가?
그때마다 그는 번번히 한 발자국 늦고 있었다.
인생이 무상이라더니........
그는 그토록 아름답고 청순하며 예지 발랄하던 백가소가 더러운 창녀(娼女)가 되어 사창가를 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열여섯 번째........
간신히 잡은 실낱같은 단서를 잡고 있다가 끊어질 듯 말 듯 할때 장천림은 참을 수 없는 절망과 분노를 느끼곤 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대은인(一大恩人) 백난천의 금지옥엽.
어쩌면 그의 인생에 마지막 희망이 되어 줄 지도 몰랐을 백가소의 행방을 찾는 일을 어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번번히 무너지는 가슴을 달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마침내 그는 나룻터의 창기촌까지 왔다.
".......!"
절로 눈살이 찌푸러진다.
얼기설기 지은 움막들........
한 움막마다 열 명도 넘는 식구들이 이와 빈대가 드글거리는 더러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집요했다.
움막을 하나하나 들추며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 어떤 움막에서는 온통 피고름으로 전신이 짓물러 가는 창녀가 두 명의 거지들을 상대로 매춘(賣春)을 하고 있었다.
어떤 움막에서는 열세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녀가 환갑이 넘은 영감을 상대로 그짓을 하고 있었다.
어떤 움막에서는 다섯 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한 명의 창녀를 상대로 일을 치르고 있었다.
어떤 움막에서는........
"우웩........ 웩........ 웩........"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몇 번이나 토(吐)했던가?
장천림은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도 또 토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그는 토악질을 하면서도 끝까지 움막들을 뒤졌다.
어차피 각오한 일이 아니던가?
백가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건 간에 그는 놀라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였다.
그녀가 병신이면 어떠랴.
창녀이면 어떠랴.
본래부터 더러운 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찾아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이 흐를 수록 장천림은 자신의 운명이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 사창가에 있는 여인들은 대부분이 동전 몇 문(文)이면 스스럼없이 옷을 벗어던지는 최하급의 창녀들이었다.
그녀들은 텅빈 움막 속에 뒹굴고 있다가 장천림이 거적을 들추자 반색을 하고는 일어서곤 했다.
"흐응........ 어서 들어와요. 끝내주게 해줄께!"
"으응........ 들어오라니까?"
장천림은 눈물이 솟았다. 그는 거적을 내리고 돌아서면서 수없이 이를 갈고 있었다. 얼마나 뒤졌을까? 그가 움막촌을 이잡듯이 뒤지는 것을 본 포주 한 명이 다가왔다.
"헤헤........ 손님은 취미가 각별하신 모양이구려. 대체 어떤 계집을 찾으시오? 이곳에는 없는 계집이 없소이다. 그 방면의 기술이 기막힌 계집을 원하오? 아니면 변태적인......."
그 작자는 움막 하나 갖지 못한 포주였다. 따라서 이곳에서도 가장 싸구려 계집 몇을 데리고 있었다.
"나이는 십육 세, 이름은 백가소. 목에 작은 점이 있고........"
장천림은 그동안 수없이 뇌까린 말을 또 끄집어 내었다.
그러나 애꾸눈을 한 포주는 그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헤헤헤! 어떤 계집인지 모르나 내가 기막힌 계집을 하나 알고 있소. 나이도 비슷할 뿐더러 더구나 그 기술은........ 헷헷! 따라 오시겠소?"
장천림은 문득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그것은 실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야릇한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애꾸를 따라 나서고 있었다.
'어쩌면........'
눈과 진흙이 엉겨 엉망이 된 골목길.
이곳은 아무리 긴 장화를 신는다 해도 잠시 후면 옷이 엉망이 되고마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는 움막의 형태도 최악이었다. 움막이라야 진흙땅에 얕으막한 웅덩이를 파고 그 위를 간신히 더러운 천으로 덮어 간신히 지붕 형태를 만든 것이 고작이었다.
이렇게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일대는 더러운 흙탕물이 넘쳐 움막 안으로 밀려들어가기도 했다.
"헤헤........ 좀 지저분하긴 해도 안에는 천하절색이 있소."
애꾸눈 포주는 손을 내밀었다.
장천림은 그에게 동전 열 닢을 던져주고 움막집, 아니 혈거(穴居) 안으로 들어갔다.
웬일인가........?
그 순간 그의 가슴은 격하게 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운명의 예감이 가슴을 무섭게 치고 있었다.
있었다.
혈거 안 쪽, 아무렇게나 뭉쳐져 있는 넝마쪽 속에 비스듬히 누운 한 여인이 눈에 쏘듯이 들어왔다.
그녀는 아예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달아날까봐 염려한 포주의 조처인지도 몰랐다. 이렇게 추운 날 아무것도 입지 않고 겨우 짚단 만 깔려 있는 맨바닥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여인, 그녀였다.
"으아아아아아!"
장천림은 울부짖었다.
백가소였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여인 백가소였다. 어쩌면 그의 운명을 평화와 안락으로 뒤바꿔놓았을지도 모를 아름답고 청순했던 여인 백가소였다.
장천림은 비명을 지르며 벌거벗은 백가소를 안아들었다. 미칠 듯한 분노가 그의 가슴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눈물이 얼굴을 적시고, 혈관은 무섭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소아(韶兒)! 소아.......!"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다.
"어딜 가시오? 그곳에서 재미를 보아야지........ 커억!"
애꾸눈 포주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비명보다 먼저 그의 두개골은 완전히 무너졌다.
장천림의 주먹이 천령개를 으스러뜨린 것이었다.
장천림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달려갔다. 그러나 계속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이곳에는 악질 포주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인들을 짐승처럼 가두어 놓은 채 돈을 벌고 있었다. 그들은 패거리가 되어 폭력으로 이 일대의 질서(?)를 유지한다.
그것은 종종 이곳을 빠져 달아나려는 여인들 때문이었다. 여인들은 그들의 밥줄이었던 것이다.
장천림이 백가소를 안고 달리자 여기저기에서 그런 불한당들이 뛰쳐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서라!"
"흐흐! 여기가 어디라구 감히!"
그들의 손에는 도끼나 낫, 또는 커다란 식칼, 또는 쇠스랑같은 것들이 쥐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백주에 살인이 일어나도 관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관인과 포주들 사이에는 일종의 묵계가 이루어져 있는 탓이기도 했다.
"크아악!"
어찌 알았으랴? 이곳의 법(法)은 황제조차 인정해야 하거늘 백주에 그들의 밥줄 하나를 납치해 달아나려는 자를 가로막던 무리들은 그저 눈 앞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장천림이 손을 내저을 때마다 그들은 추풍낙엽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장천림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는 앞을 가로막는 포주들을 닥치는 대로 도살했다. 잠시 후에는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수십 명의 시신들이 눈과 진흙탕 속에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⑤
하북에 연한 시진 제양성(帝陽城).
제양성 외곽 지역에서 장원 한 채를 빌리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장원은 낡은데다 주인은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장천림은 이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가소 때문이었다.
백가소는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여자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백치(白痴)나 다름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로는 금문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그녀를 치료하여 회복시킨 후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것이 은인 백난천을 위하는 길이자 본인인 백가소에게도 필요한 조치였다.
그는 낡은 장원 한 채를 빌리기 위하여 기름진 배를 가진 고급관리 한 사람의 창고를 털어야 했다.
물론 그런 일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는 적당히 필요한 만큼의 보물을 빼내왔다. 그것으로 여러 가지 물품을 구입하고 백가소와 함께 보낼 각종 집기들을 장만했다.
그날부터 백가소를 회복시키기 위한 피나는 치료가 시작됐다.
그것은 많은 의약품이나 생필품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인내가 더욱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설사 그 일에 반 평생이 소모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고 해낼 작정이었다.
백가소는 말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전혀 알아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밥을 먹을 생각도,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만일 장천림의 안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변해버린 그녀를 결코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백가소는 완전히 딴 사람처럼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몸은 비쩍 여위었으며 그 긴 머리칼도 군데군데 뽑혀져 있었다. 빙결같이 고왔던 피부는 탄력을 잃고 말았고 신체의 어느 곳이나 온통 거무죽죽한 멍 투성이였다.
어디 그뿐인가?
황음하고 타락된 창녀생활로 화류장독(花柳粧毒)이 옮아 여기저기 피부에 부스럼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녀를 지난 날의 아름답고 청순한 모습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대라신선이 환생한다해도 도저히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천림은 해낼 것이다.
그는 장원을 떠나지 않고 성심(誠心)을 다해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그의 눈은 집념으로 불타고 있었으며 어떤 일이라도 감내할 결의가 되어 있었다.
"아아아아악.......! 날....... 날 내보내줘.......!"
"이 더러운 놈! 어서 날 풀어줘.......!"
"으아악...... 악마! 이 더러운 놈아.......!"
꽈당! 탕탕탕......!
괴성에 가까운 비명소리와 함께 밖에서 빗장을 질러 잠겨진 나무문이 부서질 듯 요동쳤다.
뿐만 아니라 안에서 무엇을 집어 던지는지 물건 깨어지는 소리가 쉴 사이없이 들렸다.
백가소는 미친 듯이 고함을 치고 욕을 했다.
"으으으......!"
장천림은 밖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무릎 사이에 처박고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녀의 금단증상(禁斷症狀)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많은 양의 미약을 오랫동안 복용했으므로 골수 깊이 중독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약을 끊는다는 것은 죽음 이상의 고통을 주는 일이었다.
백가소는 식음을 전폐하면서 미친 듯이 오직 미약 만을 찾았다.
고비를 넘겨야 한다.
'제발, 소야! 고비 만 넘겨다오!'
장천림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방 안에 가두었다.
쿵쿵쿵......!
방 안의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백가소의 이마는 깨어져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을 것이다. 장천림은 보지 않아도 훤히 눈에 그릴 수 있는 상황 때문에 미쳐버릴 것 만 같은 심정이었다.
그는 마침내 귀를 막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술(酒).
제양성의 한 주점에 틀어 박힌 장천림은 벌써 다섯 동이의 독한 모태주를 퍼마시고 있었다.
괴로웠다.
꼭 이렇게 해서까지 백가소를 치료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 그녀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야말로 정녕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설혹 그녀가 금단증상의 무서운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옛날의 순수무구한 소녀로 되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옳으냐?
장천림은 충혈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벌써 사흘째였다.
쉴새없이 문을 두드리고 애원을 하고, 또는 벽에 머리를 찧어대는 백가소였다.
그러나 그는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고, 그녀가 원하는 미약을 넣어주지도 않았다. 다만 먹을 것 만 가끔씩 넣어 주었다.
그러나 백가소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음식물은 넣는 즉시 내던지곤 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미약이었다.
마침내 장천림은 인내의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장천림은 계산을 하지도 않고 적당히 은자를 던져준 채 달려갔다.
잠시 후 그는 굳게 잠긴 나무 문을 열었다.
"......."
조용했다.
안에 의당 있어야 할 백가소의 인기척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어두컴컴한 실내를 살펴보았다.
"헉!"
그는 찬바람을 들이켰다.
눈(眼).
아니 눈이라기보다는 시퍼런 귀화(鬼火)였다. 한 쪽 구석에서 파랗게 타오르는 두 개의 눈이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주춤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는 사이,
"죽엇!"
느닷없이 인영이 그를 향해 덮쳐들었다.
"음!"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 인영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백가소는 그가 피하지 않고 서 있자 대뜸 목에 매달리더니 갈고리같은 앙상한 손으로 그의 목을 졸라대기 시작했다.
"나쁜 놈! 내놔! 약을...... 어서!"
장천림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실로 무서운 힘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일개 여인의 손 힘이 이렇게 세다니.
그의 목은 손톱자국이 움푹 패이고 핏방울이 맺히고 있었으나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장천림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금도 반항하지 않은 채 그는 목을 졸리고 있었다.
문득 마음 한 구석에 체념이 배였다. 차라리 이대로 그녀의 손에 목을 졸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떠돌고 있었다.
"악!"
돌연 백가소가 악을 썼다. 그의 목을 조르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탈진하여 기절해버린 것이었다.
"......."
바닥에 쓰러진 백가소의 모습은 비참했다.
그녀의 머리칼은 온통 산발이 되어 있었으며, 그나마 거의 뽑혀져 있었다. 게다가 전신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그가 가장 비싼 고급 비단옷을 입혀주었으나 그녀 스스로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었다.
문득 백가소가 눈을 떴다. 그녀는 천장을 향해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눈에 이상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앙상한 손으로 자신의 유방을 쓸어잡고 가랑이를 벌리며 애원하고 있었다.
"흐으응........ 날 가져. 응? 그 대신 약을 줘........ 널 즐겁게 해줄게....... 응?"
장천림은 그만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녀의 전신에서 악취가 풍기는 것은 화류병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먼저 미약의 금단증세를 고쳐야만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장천림은 구역질을 참으며 잠시 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처절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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