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목요일
[무협] 강호무정 제23장 만겁마옥(萬劫魔獄) - 검궁인
제23장 만겁마옥(萬劫魔獄)
①
홍무(洪武) 16년 2월.
검문산(劍門山)의 험악한 지세를 관통하는 한 대의 수레가 있었다. 그 수레는 중죄인(重罪人)을 실은 호송마차였다. 수레는 삼엄한 경비에 둘러싸인 채 검문산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수레는 두 명의 죄인을 싣고 있었는데 그들의 목과 손목, 심지어는 다리에도 칼이 씌워져 있었다. 그들의 머리는 봉두난발이었으며 입고 있는 옷도 거의 찢어지다시피 했다.
죄인을 실은 수레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만겁마옥(萬劫魔獄)에 당도했다. 일단 도착한 후에 죄수를 인계하는 절차는 간단했다.
수레를 호송해온 병사들은 호패를 보였으며, 죄인에 관한 기록이 적혀 있는 서류를 넘겨주는 것으로 일단 호송의 임무를 마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만겁마옥의 옥리들에게 수레 전체를 인계하고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되돌아갔다.
만겁마옥의 옥주(獄主)는 추성결이었다.
그는 삼 개월 전 스스로 자원하여 이곳의 옥주로 임관했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아직도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강 연변의 매화림에서 백리진강을 놓친 이후, 그는 기필코 그를 자신의 손으로 잡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었다.
그에게는 확실한 인질이 있었다. 환사금이 바로 그가 확신하는 미끼였다. 그녀만 있다면 언제고 백리진강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환사금이 임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은 온다. 반드시 자신의 계집을 구하기 위해 올 것이다. 아니, 자신의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 후후후......! 놈을 잡지 않는 한은 결코 황궁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추성결.
그는 이런 인간이었다. 만일 그가 이토록 집념이 강한 인간이 아니었다면 황궁에서 그만한 지위를 누릴 수 없었을 지도 몰랐다.
"옥주님. 새로운 죄수가 들어왔습니다!"
문득 밖에서 수하의 보고가 들려 왔다. 그는 상념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들었다. 다소 의아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어리고 있었다.
"새 죄수라고?"
그가 이곳에 부임한 이래 아직까지 새로운 수인은 한 명도 없었다.
"들어 와라."
수하가 들어왔다. 그는 쟁반에 서류를 담은 채 받쳐 올렸다.
"여기 서류가 있습니다."
추성결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서류를 읽어 보았다.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의 눈살이 서서히 찌푸려지고 있었다.
"아주 지저분한 놈들이로군......."
과연 서류에는 수인에 관한 죄과(罪果)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번에 호송되어온 자들이야말로 정말 형편없는 작자들이었다.
등급: 삼급.
성명: 모삼충(毛三蟲).
나이: 삼십팔 세.
죄명: 황궁 내전(內殿)에 잠입하여 궁녀 스물 네 명을 강제 추행한 혐의. 특히 안상궁(安尙宮)을 겁간하여 금의위에 잡혔음. 변태적인 취미가 있는 자로써 타고난 색광임.
등급: 삼급.
성명: 진자앙(陣子殃).
나이: 사십일 세.
죄명: 황궁 일대를 횡행하며 고관대작의 보고를 털고 그의 후첩들을 희롱한 작자임.
추성결은 어이가 없었다.
'겨우 이 정도로 만겁마옥에 들어왔단 말인가?'
추성결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서류를 읽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하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명은 대단치 않지만...... 황궁의 대인들께서 워낙 원한을 가지고 있어 특별히 이곳에서 고생을 시키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추성결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네가 알아서 해라. 놈들을 만날 생각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마음은 딴 데 가 있었다. 그는 환사금을 인질로 하는 동안 언젠가는 백리진강이 이곳에 쳐들어올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도박이었다. 그러니 한낱 좀도적이나 색광 따위가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삼충과 진자앙의 진실한 정체를. 그는 다만 삼급 정도의 경죄를 저지른 풋내기들이라 여기고만 있었다.
②
삼급의 수인들은 중노역에 종사한다.
그들은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 남자든 여자든 똑같은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바위를 나르거나 잘게 부수는 일, 또는 잘게 부순 바위를 걸러 사금(砂金)을 채취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고통스런 것은 참을 수 없는 열기(熱氣)였다. 검문산의 지하에는 용암이 흐르고 있어 만겁마옥의 작업장에 흐르는 물은 펄펄 끓고 있었다.
게다가 코를 찌르는 유황(硫黃) 냄새로 인해 하루 종일 골치가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이곳 작업장에서 강제노역을 하는 삼급 수인들은 너무나 더워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남자들은 그런대로 사타구니에 천 한 장을 가리고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난처한 것은 여자 수인들이었다. 여인들은 남자와 달리 옷을 벗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한계 상황에 놓이면 기본적인 수치심마저 없어지는 법인가?
이곳에서 일하는 여자 수인들은 놀랍게도 남자와 다름없는 차림새였다. 그녀들 역시 엉덩이와 하복부만을 간신히 가린 작은 천 한 장만을 두른 채 일하고 있었다.
비오듯 땀이 쏟아져 내린다. 구슬같은 땀방울이 여인들의 투실투실한 젖가슴 사이 계곡을 흘러 뚝뚝 떨어지곤 했다.
게다가 일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거나 허리를 숙일 때마다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어찌보면 아찔할 정도로 육감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옥이나 다름없는 만겁마옥에서 늘 이런 모습을 대하다 보면 그 풍경도 낯익은 것이 되고 만다.
실상 이곳의 여인들이 옷을 벗고 일하게 된 것은 옥리(獄吏)들 탓이었다. 옥리들이 강제 규정을 만들어 여인들도 남자 수인들과 똑같은 차림을 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노역을 하다가 죽는다 해도 누구 하나 서러워 하는 자도 없을 뿐더러 상부에 간단한 보고만 하면 끝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곳이 이곳 만겁마옥이었다.
만겁마옥의 법이 곧 이곳의 법이었으며 모든 것은 옥리들에 의해 결정되고 행해진다.
옥리들은 이곳에 배속되면 최소한 오 년 이상 근무해야 교체가 되므로 나름대로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유희를 만들기도 했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여자 수인들을 벗게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채찍을 들고 여수인들을 감시하면서 툭하면 채찍을 휘두르거나 장난을 치곤 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꾀 부리는 것은 통하지 않아!"
짝! 짜악! 짝!
채찍이 길다란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면 여수인들의 새하얀 등판이나 허리, 때로는 엉덩이에 붉은 선이 새겨진다.
"아아악!"
채찍이 몸을 휘감으면 살갗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에 여수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진다. 때로는 무릎꿇고 애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봐달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옥리들은 더욱 잔인하게 여수인들을 다루어 지리함을 이기려 했다. 그들은 여수인들의 나체나 다름없는 몸을 감상하며 온갖 장난을 친다.
채찍으로 마구 치면 여수인들은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지르고, 때로는 한 장밖에 없는 천이 걷혀 올라가 희뿌연 허벅지 안 쪽까지 드러나곤 했다. 그 광경에 옥리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며 쾌감을 즐기는 것이었다.
"흐흐흐...... 더러운 년! 아랫도리를 많이도 굴렸구나."
이곳은 지옥이었다.
어떤 옥리들은 여수인을 끌고 가 바위 뒤편에서 정욕을 채우곤 했다. 이런 일을 문제삼는 자는 없었다. 도리어 여수인들은 옥리들의 만족을 채워줌으로써 하루 정도 편히 쉬고 음식을 보급받을 수 있다면 너도나도 나서기도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떤 여수인들은 일부러 옥리들을 유혹하기까지 했다.
또한 여기저기서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옥리는 남자 수인 대여섯 명에게 윤간(輪姦)당하는 여수인을 보며 즐거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남자 수인들은 한껏 억눌렸던 욕망을 풀기 위해 짐승처럼 변하곤 하는 것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곳에 있는 여수인들은 대부분 과거 높은 신분을 지니고 있던 고귀한 여인들이었다. 대부분 황궁의 나인이거나 고관대작의 아내들이었다.
그러므로 피부가 곱고 미색이 절륜한 경우가 많았다.
"정말 소름끼치는 곳이군."
바위를 짊어지고 운반하던 진자앙이 낮게 말했다.
"......."
"빌어먹을!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이곳은 지옥이나 다름없군."
곁에서 자갈 부대를 메고 따르던 모삼충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삼 일을 둘러봤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군.
그 말에 진자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곳에는 삼급 수인들만 있다. 이곳은 등급마다 작업장이 다르다. 이급 수인들은 금광석을 채취하는 막장에서 일하고, 일급 수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들었다."
"음, 그럼 특급?"
진자앙의 얼굴에 안광이 번뜩 일어났다.
"맞아. 특급이야. 추성결은 그녀를 특급으로 분류해 놓았을 것이 틀림없다."
모삼충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한 시라도 빨리 특급 수인들이 있는 곳을 찾아야 된다."
그 말에 진자앙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는 안색이 굳어졌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뭐지?"
진자앙은 난색을 표하며 말 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건 좀......."
모삼충은 문득 진자앙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깨달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모삼충은 결심한 듯 중얼거렸다.
"할 수 없지. 대(大)를 위해 소(小)를 버릴 수밖에."
무슨 뜻인가? 대는 무엇이고 소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③
삼급 수인들이 일하는 작업장에 일대소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얼마 전 만겁마옥으로 들어온 두 명의 수인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희대의 색광으로 소문난 이력 그대로 행동한 것이었다. 엄격한 옥리들의 감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수인들을 틈만 나면 겁탈한 것이었다.
"아악! 놓아라!"
으슥한 암석 뒤편에서 째지는 듯한 비명이 울렸다. 그곳에는 진자앙과 모삼충이 한 여수인을 겁탈하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로 인해 비오듯 땀이 흘러내려 여수인의 온 몸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진자앙은 망을 보고 모삼충은 여인의 두 다리를 붙잡고 다짜고짜로 밀어부치고 있었다.
"악! 흐윽! 이 나쁜 놈!"
여수인은 삼십대로 보였다. 과거에는 고귀한 신분의 여인인 듯 눈매가 곱고 피부색이 우윳빛이었다.
탄력 넘치는 젖가슴이 모삼충의 손에 의해 뭉개지고 있었다. 여인은 발버둥쳤으나 무자비한 모삼충의 완력을 당할 수가 없었다. 모삼충은 그녀의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린 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마침내 여수인은 포기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모삼충은 욕망을 채운 후 여수인의 젖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에는 잔혹한 빛이 아니라 한 가닥 연민의 빛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퇘에! 이 나쁜 놈! 무사할 줄 아느냐?"
겁탈당한 여수인은 침을 뱉았다. 침은 모삼충의 가슴팍에 달라 붙었다.
"헤헤! 뭘 그러느냐? 너도 즐겼으면서. 이봐, 친구! 이번엔 자네 차례야."
모삼충은 음충맞게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망을 보던 진자앙이 다가왔다.
여수인은 공포의 표정을 드러냈다. 비록 이곳에서는 순결도, 정조도 통하지 않았으나 아직까지 그녀는 한꺼번에 두 사람을 상대한 적이 없었다.
"무, 물러가라! 이 더러운 놈들아!"
표독스런 눈빛으로 노려보며 외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진자앙은 머뭇거렸다. 그때 그의 귓전에 누군가의 전음이 흘러 들었다.
(천림. 순간의 자비로 일을 그르치지 마라. 어차피 그녀는 죽은 목숨이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는 않았겠지? 자칫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그것은 모삼충, 즉 석회림의 전음(傳音)이었다.
진자앙으로 변장한 사람은 다름아닌 장천림이었다. 그는 심한 갈등을 느꼈다. 아무리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인간으로서 범할 수 없는 파렴치한 짓을 하기에는 마음이 허용치 않았다.
이때 여수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장천림의 얼굴에서 갈등하는 빛을 발견한 것이었다.
(천림! 허를 보이면 끝이다! 뭘 망설이는 거냐!)
석회림의 다급한 전음이 울렸다. 장천림은 입술을 깨물었다.
'용서하시오. 여인이여!'
그는 여수인에게 다가갔다. 여수인은 손으로 땅을 짚고 뒤로 물러났다.
"다, 다가오지 마라!"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두 걸음도 가기 전에 문득 그녀는 두 다리가 번쩍 치켜 들리는 것을 느꼈다.
"아악!"
장천림이 뒤에서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여인은 발버둥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장천림은 뒤에서 그녀를 공격했다. 여인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면서 당해야만 했다.
처절한 비명소리에 여기저기서 일하던 수인들이 달려왔다. 그러나 장천림은 태연히 여인을 공격했다.
"뭣들 하는 거냐!"
호통소리와 함께 우르르 대여섯 명의 옥리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바위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옥리들 앞에서 허락도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옥리들은 그만 눈이 뒤집혔다.
"이런 건방진 놈들!"
"뒈져랏!"
쐐애애액!
채찍이 날아갔다. 그러나 모삼충과 진자앙은 가만히 당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채찍을 손으로 감아들고 옥리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잘 한다!"
수인들은 빙 둘러서서 그 광경을 구경했다. 실로 오랫만에 보는 쾌거였다. 그들은 옥리들에게 억눌리고 억눌린 설움을 대신 보상받는 듯한 쾌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모삼충과 진자앙은 벌써 다섯 명의 옥리들을 때려 눕히고 있었다.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적절히 이용하여 휘두르는 바람에 옥리들이 피를 토하며 나가 떨어지곤 했다.
"헤헤헤! 너희들만 사람이냐?"
"우리도 재미 좀 보자는데 왜 안 된다는 거냐!"
마침내 수십 명의 옥리들이 덤벼 들었다. 아무리 날쌔다 해도 모삼충과 진자앙의 행동에는 제약이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급 작업장으로 보내라!"
모삼충과 진자앙.
만겁마옥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반란을 일으킨 그들은 무려 일주야 동안이나 감금된 채 음식마저 중단되는 징계를 받았다.
그후 그들은 이급 작업장으로 보내졌다. 일종의 승급(?)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급 작업장은 삼급 작업장보다 훨씬 고생스러운 곳이었다.
지옥 중에서도 더 심한 지옥이랄까? 그러나 두 사람은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이급 작업장엔 더 빼어난 미녀들이 있소?"
옥리에게 끌려 가면서도 모삼충은 징글맞게 웃고 있었다.
모삼충과 진자앙이 옮겨진 곳은 하루 종일 햇볕이라곤 볼 수 없는 동굴 속에서 금광석을 캐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이전보다 더한 중노역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들은 며칠 일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역시 두 명의 여죄수들을 건드렸으며 옥리들과 대판 싸움을 벌이다 붙잡힌 것이었다.
"일급 수인으로!"
열흘 동안 금식(禁食)과 오백 대의 태형을 받은 두 사람은 이제 발목뿐 아니라 손목에도 족쇄가 채워진 채 일급 수인으로 승급되어 다시 작업장이 옮겨졌다.
일급 수인들은 대부분 역모를 꾸미다 체포된 전직 고관이거나 사대부 출신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색광에 불과한 두 사람이 들게 된 것이었다.
이 작업장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작업장에는 매케한 유황연기가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유황연을 맞으면 허파가 뒤집혀질 듯한 기침이 나왔다.
아무리 체력이 강한 자라도 이곳에서는 육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유황독이 골수까지 침투하여 온 몸이 썩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한편, 모삼충과 진자앙으로 변장한 두 사람은 일급 수인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알고보니 이곳의 수인들은 대부분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대다수 대명제국을 건국한 공신(功臣)들이었다. 그러나 대명이 반석에 오른 후 홍무제 주원장에 의해 배척된 자들이었다.
주원장은 건국의 신화를 이룬 후 건국 공신들을 배척하는 비정(非情)의 정치를 펼쳤다. 그것은 황제의 권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다.
그로 인해 명을 건국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충신들과 장군들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이곳 만겁마옥에 갇힌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이 땅에서 원을 몰아내고 한족의 나라를 세웠던 사람을 이렇게 만들다니......?"
모삼충, 즉 석회림이 흥분하여 중얼거렸다. 장천림은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면 권력(權力) 만큼 추한 것도 없는 법이다. 권좌에 오르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적으로 보인다고 하지 않더냐?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고 버림받은 사람만 불행할 뿐......."
유황연이 자욱한 작업장에서 한 때 대륙을 질타하며 원을 몰아내고 중원에 한족의 나라를 세웠던 장수들이 버러지처럼 꿈틀거리며 일하고 있었다. 실로 비참한 일이었다.
이곳에는 여자 수인들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들은 나이도 들었으며 유황독으로 전신이 짓물러 음욕을 느끼게 할 육체도 지니고 있지 못했다.
(이번엔 어떤 방법을 쓰지?)
모삼충, 즉 석회림이 고민스런 표정으로 전음을 전했다.
(다른 방법을 써야지. 똑같은 방법을 써봐야 의심만 살 뿐이다.)
(어떤 방법을?)
(이곳의 인물들은 한 때 장수들이거나 충신들이었다. 감정을 자극하여 작은 반란을 일으키는게 어떨까?)
장천림의 전음에 석회림은 눈을 반짝였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럼 어떤 방법을 쓰지?)
"으으! 이 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으아아! 우릴 풀어 주지 못하겠느냐!"
이십여 명의 옥리들은 아우성을 쳤다.
그들은 한 동굴에 처박혀 있었다. 실로 꿈에도 상상 못한 일이었다.
늙고 병들어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져 버릴 늙은이들이 대다수인 일급 수인 지역에서 반란(叛亂)이라니!
반란을 주도한 자는 모삼충과 진자앙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힘을 쓰지 못하는 일급 수인들을 지휘하여 스물네 명의 옥리들을 동굴로 몰은 후 유황연기를 불어넣어 사로잡은 것이었다.
"으하하하하! 네 놈들도 유황을 실컷 마셔봐라!"
"크크크크ㅋ! 어떠냐? 뼛골이 녹아나는 맛이지?"
눈이 짓무르고 뼈가 삭은 것은 물론 온 몸의 피부가 녹아 내리고 있는 일급 수인들은 어린애처럼 기뻐 날뛰며 옥리들을 조롱했다.
옥리들은 동굴에 갇힌 채 독한 유황연기 속에서 기침을 하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려 해도 나올 수가 없었다.
석회림과 장천림이 유황천(硫黃泉)을 동굴 쪽으로 흘러가게 하여 폭이 이 장(二丈)이 넘는 부글부글 끓는 유황의 내(川)를 동굴 입구에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만일 밖으로 나오려면 유황천을 통과해야만 했다. 유황이 직접적으로 피부에 닿으면 어떻게 되는 지는 옥리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채 동굴 속에서 고함만 쳐대고 있었다.
④
"으음!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그런 말썽을 부린단 말이냐?"
보고를 받은 추성결은 왈칵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는 현재 만겁마옥주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백색마인 백리진강을 잡기 위한 일념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들이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런데 수하들이 계속 그를 귀찮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놈들이 워낙 교활하여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키니......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에 추성결은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규칙 위반이 아닌가?"
그렇다. 이곳의 규칙은 어떤 경우라도 수인들을 죽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자연사를 하던가 스스로 자살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의로 죽이지 않는 것이 수인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수인들을 죽인다는 것은 도리어 사면을 내리는 격이 되는 셈이었다.
"그럼 다시 특급으로 올릴까요? 그곳이라면 놈들도 더이상 발악하지는 못할 것으로......"
추성결은 잠시 생각했다.
'고작 추행 혐의로 들어온 놈들을 특급으로? 그건 좀 뭣한데......'
이때 문득 그의 머리에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참, 놈들의 특기가 뭐라고 했지?"
수하는 흠칫하며 대답했다.
"놈들은 지독한 색광들입니다."
"색광이라......."
그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 계집이 지금쯤은 꽤나 배가 부를 텐데....... 그렇다면...... 후후......'
추성결은 많이 변했다. 한 인간이 변하게 되기까지는 어쩌면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을 지도 몰랐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좌절이나 격변에 달려 있는 문제였다.
과거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당당한 무인이었다. 그러나 만겁마옥에서의 생활은 그를 차츰 변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지옥같은 곳에서 옥리들이 그렇듯이 잔인하고 변태적인 즐거움을 누릴 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곳이 인간계가 아니라 지옥계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수인들은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없었다. 그 점이 그의 성격을 변하게 한 요인이었다.
마침내 그는 결정을 내렸다.
"후후후......! 좋다. 특급으로 승급시켜라. 일단 특급 십삼 호와 한 방에 가두도록!"
"옛?"
수하는 놀라 멍청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황급히 대답했다.
"존명!"
⑤
인간의 생명은 참으로 끈질긴 것이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한 방울의 물과 공기만 있으면 놀랄 만큼 오래 생명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것도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다. 만삭이 가까운 여인이 만겁마옥에서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환사금은 살아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만겁마옥에서도 가장 지독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특급수인들만 수감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는 중신(重臣)들이었거나 혹은 변방국가의 족장들, 또는 한 때 용맹을 떨치는 장수들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는 있어도 끝까지 지킬 것은 지키고 있었다.
(보았나......?)
(봤다.)
(진강이 반할만 하군.......)
(다행이군. 아직은 건강해 보인다. 이제 구출해 내는 일만 남았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어젯밤 이곳으로 수감된 수인들이었다. 처음에는 삼급 수인으로 들어왔다가 불과 두 달만에 특급으로 승급한 인물, 즉 모삼충과 진자앙이었다.
지금 그들은 환사금과 한 방에 있었다. 그들을 환사금과 함께 집어넣은 의도는 뻔한 것이었다.
그들이 호색한들이라는 것을 알고 환사금을 괴롭히려는 의도인 것이었다.
환사금은 동산만하게 부른 배를 안고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다.
아름다웠다. 숱한 고초를 겪은 여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순결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둥글게 부푼 배를 손으로 안고 앉아 있는 그녀에게서는 모성(母性)의 숭고함이 보이고 있었다.
장천림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환사금이 이곳에서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이곳의 특급 수인들은 모두 사십오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한결같이 환사금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유일한 여자이기도 한 그녀를 마치 자신들의 며느리나 되는 듯이 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 임신한 그녀에게 보태 주었다.
영양이 부족하면 태아가 부실해지고 그렇게 되면 임산부도 건강을 해치게 된다.
환사금은 비록 지옥 속에 있었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피부과 칠흑같은 머리칼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특급 수인들은 살아서 만겁마옥을 나갈 희망이 없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환사금이 이곳에 들어온 것은 도리어 그들에게 한 가닥의 희망의 빛을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희망없는 인간들 속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성그러운 생명을 잉태(孕胎)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위안 받으며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에 장천림과 석회림은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여긴 인간들이 제법 있군, 그래.)
석회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은 모순된 구조일 수 있었다. 그들은 백가소의 복수를 위해 무림맹과 대결한 적이 있었다. 외면적으로 볼 때 무림맹은 백도 무림의 결집체였다.
더구나 그들이 척살해야 할 대상은 강호사공자였다.
백도 무림의 후기제일인인 그들과의 대결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겉으로는 선인이었던 그들의 내면은 그야말로 추악함이 아니었던가.
이곳은 천하의 중죄를 지은 죄수들을 가둔 만겁마옥이었다. 그러나 살이 썩고 뼈가 곯아가고 있는 추악하기 그지없는 수인들의 내면에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 사실에 장천림과 석회림은 세상이 잘못 투성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빌어먹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여자를 구해내야겠네.)
장천림은 석회림의 전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동감이었다.
두 사람은 만겁마옥을 탈출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날개를 달지 않는 한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것은 어딘가에 헛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두 사람은 그 헛점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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