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9일 화요일
25 소이비도 제2권 괴변
괴변
한씨 형제, 양승조, 호비, 단개산, 호미 등 여섯 사람은 사색이 되어 서로 마주보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우리를 죽인다는 것인가? 누가.....'
이것은 그들 여섯 명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의 공력으로 보아 무림의 일류고수 같은데 어찌 우리들이 그를 모르는 것일까?'
'그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일까?'
한씨 형제 등 여섯 명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심 불안해 했다. 밖의 바람은 점점 거세게 불기 시작했으며 촛불에 비친 깡마른 사나이의 얼굴은 더욱더 공포스럽고 신비하게 보였다.
한씨 형제 등 여섯 명은 그 사나이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얼마 동안 안절부절 못하였다. 어떤 자들은 도망갈 생각을 하였으나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쥐새끼처럼 도망갔다는 소문이 강호에 퍼진다면 차후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한단 말인가. 하물며 그 깡마른 사나이는 설사 도망간다 해도 아무 쓸데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키가 작고 깡마른데다가 얼굴에 흰 털까지 난 호비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한씨 형제 앞으로 다가가 포권의 예를 취했다.
"소생은 남산쌍호의 위명을 오래 전부터 듣고 마음속으로 존경해 왔습니다."
남산쌍호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대호 한반이 포권의 예를 취해 답례를 했다.
"송구스럽소이다!"
이호 한명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대협과 호낭자 남매의 암기와 경공술이 천하쌍절이라는 것은 저희 형제들도 오래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호비는 내심 흐뭇했으나 내색은 않고 겸손하게 대꾸했다.
"한대협께선 너무 과찬을 하셨습니다."
이때, 수사 호미도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하게 웃으면서 답례를 했다.
호비는 빙그레 웃으면서 정중하게 말했다.
"만약 두 분께서 괜찮으시다면 저희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얘기를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한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쾌히 승낙했다.
"좋습니다. 소생들도 마침 그러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두 패의 사람이 만약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어쩌면 생사를 건 혈투를 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모두 동일한 적을 상대하게 되었으므로 재빨리 공동전선을 펼쳐 자신들의 목숨을 구할 생각인지라 즉시 한 데 어울렸다.
모두들 자리를 같이하자 호비가 술잔을 높이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두 분께선 관동에 오래 계셨고 소생들은 또 강수 사이에서 한동안 지내왔으니 누가 우리를 일망타진할 수 있을지 도저히 생각해 낼 수가 없군요."
한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소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비는 깡마른 사나이를 힐끗 쳐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저 친구의 말투로 보아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자는 공력이 상당히 고강한 것 같군요. 보아하니 우리는 그 사람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 같소. 하지만....."
말을 중단한 그는 잠시 멈칫거리며 사방을 둘러보고는 자신이 너무 의기소침해 있다는 것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는지 억지로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그 자가 제아무리 공력이 심후하다고 해도 우리 여섯 명이 합심하면 그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한씨 형제는 이 말을 듣자 용기백배해져 찌푸렸던 미간을 활짝 폈다. 한반은 조금 전의 공포에 떨던 태도를 백팔십도로 바꿔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호형께선 말씀 한번 잘하셨습니다. 우리 여섯 명은 감각이 없는 돌부처가 아닌데 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겠소?"
이렇게 말한 그는 암암리에 깡마른 사나이를 슬쩍 훔쳐보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것을 보지 못했다.
한명도 이제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 큰소리로 떠들었다.
"이에는 이로 주먹에는 주먹으로 대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가 없지만 정말로 온다면...흐흐흐....."
호미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만약 정말로 온다면 우린 그 자를 오도가도 못하게 해요!"
이것이 소위 사람이 많이 모이면 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여섯 사람이 한꺼번에 모이자 단개산과 양승조까지도 기고만장해졌다. 이렇게 여섯 사람이 기고만장하여 떠들어대고 있을 때
"흥!"
하는 차갑기 그지없는 냉소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여섯 사람의 안색은 동시에 급변했다. 그리고 목에 무엇이 막힌 듯 비단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손꼽추는 움찔 놀라 한쪽에 서서 넋을 잃고 움직일 줄을 몰랐다. 냉랭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 앞에 네 명의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 네 사람은 색깔이 매우 선명한 황색 장삼을 입고 있었다.
이들 중 두 명은 바로 아침에 소식을 물으러 왔던 그 황삼인이었다. 그들은 문 앞에 도착했으나 이내 들어오지 않고 두 손을 내려뜨린 채 장승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손꼽추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고만장해 있던 여섯 명이 어째서 그들에 대해서 이처럼 무서워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 여섯 사람의 표정은 사람이 아닌 귀신을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들 여섯 명은 한쪽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된 술주정뱅이가 부럽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또 아무것도 듣지 못하니 물론 무서워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백발이 성성한 남삼노인과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여지없이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댕기머리 처녀였다. 이 두 조손은 매우 태연했으며 전혀 무서워하는 빛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삼노인은 오히려 여유만만하게 술까지 마시고 있었다.
주막 안에 기이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갑자기 문 밖에 서 있던 네 명의 황삼인이 뒷짐을 진 채 한 청년과 함께 서서히 걸어 들어왔다. 이 청년 역시 황색 장삼을 입고 있었으며 그의 생김새는 매우 준수하고 또한 품위가 있어 보였다.
다만 네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황색장삼에 금테가 둘러져 있다는 것이다. 황삼청년은 비록 준수하게 생겼으나 얼굴이 얼음장처럼 냉막했으며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선 황삼청년은 사방을 둘러보더니 깡마른 체격을 지닌 청면 사나이에게 시선을 멈췄다.
청면 사나이는 그의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술을 마실 뿐이었다. 황삼청년의 입가에 지극히 차가운 냉소가 흘렀다.
황삼청년은 서서히 몸을 돌리더니 이번엔 양승조 등 여섯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여섯 사람은 모두 황삼청년보다 험악하게 생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황삼청년의 시선을 받는 순간, 여섯 사람은 혼이 다 빠져나간 듯 앉은 채 비틀거렸다.
황삼청년은 천천히 다가가더니 품속에서 여섯 개의 노란 구리 동전을 꺼내어 여섯 사람의 머리 위에다 각각 하나씩을 올려놓았다.
양승조 등 여섯 사람은 갑자기 돌부처라도 된 듯 황삼청년이 하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둔 채 꼼짝하지도 못했다.
황삼청년은 다시 몇 개의 동전을 꺼내어 짤랑짤랑 흔들면서 한발 한발 남삼노인과 댕기머리 처녀의 상 앞으로 다가갔다.
남삼노인은 고개를 들어 황삼청년을 응시하며 빙그레 웃었다.
"친구, 만약 술을 마시고 싶다면 여기 와서 앉으시오! 내가 한 잔 사겠소."
남삼노인은 술에 취한 듯 혀가 꼬부라져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황삼청년은 남삼노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냉막하게 웃었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는가 싶자 별안간 상을 힘껏 내리쳤다.
꽝!
이 소리와 동시에 접시에 담겨져 있던 땅콩이 모두 튀어올라 폭풍우와 같이 노인의 얼굴을 향해 폭사되어 나갔다.
남삼노인은 이 광경에 넋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화석이라도 됐는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벌떼 같은 땅콩이 막 노인의 안면을 향하는 찰나 황삼청년이 느닷없이 오른손을 뻗었다.
순간, 그 많은 땅콩들은 강한 흡수력에 끌려 그의 소매 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황삼청년이 싱긋 웃으며 소매를 떨구자 다시 땅콩이 쏟아져 나와 접시 위에 담겨졌다.
남삼노인은 두 눈이 휘둥그래진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댕기머리 처녀는 황삼청년의 비범한 솜씨에 손뼉을 치면서 간드러지게 웃었다.
"호호호...정말 재미있군요. 당신이 그런 재미있는 놀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인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몇 가지 더 재미있는 솜씨를 보여주세요. 그러면 제가 할아버지를 졸라 술을 사드리도록 하겠어요!"
황삼청년은 극히 청순한 내가장력으로 비할 데 없이 절묘한 암기 수법을 전개한 것이다. 그런데 천진난만한 처녀가 이것을 아이들이 하는 구경거리로 생각할 줄이야. 그런데도 황삼 청년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댕기머리 처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서서히 몸을 돌렸다.
댕기머리 처녀는 어리광부리듯 급히 말했다.
"재미있는 구경을 좀더 보여주시지 않겠어요?"
이때였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않고 있던 청면 사나이가 느닷없이 냉혹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런 구경거리는 될 수 있는 한 보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댕기머리 처녀는 두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무엇 때문이지요?"
청면 사나이는 살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당신들이 만약 무공을 할 줄 알았다면 방금 그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당신들을 죽였을 것이오!"
댕기머리 처녀는 황삼청년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으나 내심 겁이 난 듯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황삼청년은 청면 사나이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천천히 술주정뱅이 앞으로 다가가 수중의 동전을 흔들었다.
짤랑! 짤랑!
그러나 술주정뱅이는 상에 엎드린 채 인사불성이었다.
황삼청년은 냉혹하게 웃으며 술주정뱅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가볍게 들어올렸다. 황삼청년은 술주정뱅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그가 손을 놓자 술주정뱅이의 머리가 상에 꽝! 부딪쳤다.
그러나 술주정뱅이는 여전히 그대로 엎드려 코를 골고 있었다.
청면 사나이가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한번 취하면 세상만사를 다 잊는다는데 그게 사실인 모양이군. 술취한 사람은 취하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이점이 많지."
그러나 황삼청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뒷짐을 진 채 서서히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괴변이 생겼다.
황삼청년이 밖으로 나가자 단개산, 양승조, 호비, 호미, 한반, 한명 등 여섯 사람이 일제히 일어나 황삼청년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끌고가듯 끌려가는데 그들은 모두 울상을 하고 목을 학처럼 길게 뽑고 있었다.
머리 위에 올려진 동전이 떨어질 것이 두려운 듯 상반신을 꼼짝하지 않으며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였다.
손꼽추는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이처럼 괴이한 일은 생전 처음 보았다. 이들 여섯 사람의 공력이라면 어떠한 사람이든지 능히 상대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이 황삼청년 앞에서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쩔쩔매는 것일까?
손꼽추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구태여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는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위인인지라 이런 일은 알지 않는 것이 좋으며 섣불리 알았다가는 원하지 않는 고통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골목 안은 바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문득 앞에 있던 네 명의 황삼인이 이때 땅바닥에 수십 개의 원을 그려 놓았다. 그 동그라미는 두 발이 들어가면 꽉 찰 만한 원이었다. 단개산 등 여섯 명은 황삼청년 의 뒤를 따라나가 극히 자연스럽게 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망부석같이 꼼먃┫聘逑舊?않았다.
황삼청년은 다시 객점으로 돌아와 단개산이 앉아 있었던 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황삼청년의 표정은 시종일관 서릿발보다 더 차갑고 지금까지 일언반구도 없었다. 잠시 후 또 한 명의 황삼인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 사람은 비교적 나이가 많은데 한쪽 귀와 한쪽 눈이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그의 외눈에선 화염이 이글거리듯 무서운 신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그가 입고 있는 황색 장삼에도 금빛 테가 둘러져 있었고 그의 뒤로 칠팔 명의 사람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차림새로 보아 결코 무명소졸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도 단개산 등 여섯 명과 똑같이 울상이 된 채 목을 학처럼 길게 내뻗고 극히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머리 위엔 한결같이 동전이 하나씩 얹혀져 있었다. 그 중에는 피부가 검고 깡마른데다가 매우 위맹하게 생긴 사람도 끼여 있었다.
단개산 등 여섯 명은 그 사람을 보자 모두들 의아해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어째서 이곳에 왔지?'
외눈 장삼인은 단개산 등 여섯 명을 훑어보더니 싸늘하게 웃으며 그 역시 뒷짐을 진 채 서서히 객점 안으로 들어가 황삼 청년의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은 마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자 골목 안으로 또 한 명의 황삼인이 들어섰다. 이 황삼인은 머리와 수염이 모두 눈처럼 희었다.
그의 황색 장삼에도 예외없이 금빛 테가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도 역시 십여 명의 사람이 멍하니 뒤따르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황삼노인에게는 별로 이상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가까이 와 보자 그제야 그의 얼굴이 녹색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처럼 하얀 수염과 머리카락에 녹색 얼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비스럽고 공포스럽게 하였다. 비단 얼굴이 녹색일 뿐만 아니라 두 손까지 녹색이었다.
객점 밖의 원 안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그 노인을 보는 순간 지옥의 악귀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떤 자들은 새파랗게 질린 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이렇게 해서 반 시간도 채 못되어 객점 밖에 그려진 원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찼다. 그들은 마치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돌부처처럼 굳어 있었다.
황삼에 금빛 테를 두른 사람은 모두 네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황삼인은 더욱더 늙어 보였는데 몸이 꼬부라진 것이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노인이 데리고 온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많았다.
이 네 명의 황삼인은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이들은 모두 벙어리인지 그렇지 않으면 말을 잊어버렸는지 도통 말이 없었다.
일순 작고 누추한 객점 안과 밖은 마치 공포의 무덤처럼 변하여 일정치 않은 숨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질식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손꼽추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청면 사나이와 댕기머리 처녀, 그리고 남삼노인은 시종 무표정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정녕 이곳의 광경을 구경하고자 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얼마나 지났을까? 골목 끝에서부터 갑자기 쇠붙이가 땅을 차는 맑고도 무거운 소리가 들려왔다.
딱! 딱! 딱!
지금과 같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을 때 이러한 소리를 듣자니 더욱 음산하고 신비스럽게만 여겨졌다.
딱! 딱! 딱!
그것은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한 소리였다. 네 명의 황삼인은 서로 마주 쳐다보더니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쇠붙이가 땅을 차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깝게 들려왔다.
이어서 어두운 장막을 뚫고 한 인영이 서서히 나타났는데 그 나타난 사람의 왼쪽 다리는 무릎 부분에서부터 잘려져 나간 채 없었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혼을 빼앗는 듯한 소리는 바로 그 지팡이에서 난 것이었다. 객점 앞에 걸린 등잔불이 희미하게나마 나타난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아무렇게나 늘어졌고 솥 밑부분과 같이 검은 얼굴엔 수많은 칼자국이 나 있었다.
삼각으로 된 뱁새눈에 땅을 쓰는 빗자루와 같은 눈썹을 지니고 있었고 코와 입은 사자보다도 더 큰 것 같았다. 이러한 모습의 소유자는 설사 얼굴에 칼자국이 없다고 해도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것이다.
네 명의 황삼인은 급히 달려나가 공손히 고개를 조아려 예를 올렸다. 이 외발의 괴인은 손을 가볍게 흔들 뿐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객점 안으로 들어왔다.
손꼽추는 이때야 비로소 이 괴인도 황색의 장삼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장삼의 아래쪽을 걷어 허리에다 끼웠고 옷은 색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 더러운 황색 장삼에도 역시 금테가 둘러져 있었다.
청면 사나이는 이 괴인을 보자 안색이 급변했다. 댕기 처녀는 무서운 듯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더 이상 바라보지도 않았다.
황삼괴인은 들어서자마자 객점 안을 두루 살펴보다가 청면 사나이를 보더니 미간을 다소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모두들 수고했소."
이 황삼괴인은 비록 흉악하기 비할 데 없이 생겼지만 말투는 몹시 부드러웠다.
네 명의 황삼인은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스럽습니다."
외다리 괴인이 다시 물었다.
"모두들 데려왔소?"
황삼노인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외다리 괴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또 물었다.
"모두 몇 명이나 되오?"
"사십구 명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그 일 하나 때문에 온 것이 틀림없소?"
황삼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소생 등은 이미 엄밀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지난 삼 일 내에 온 사람들로서 그 일 때문에 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약속도 없이 모두 이곳에 왔겠습니까?"
외다리 괴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되었소. 무고한 자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오."
황삼노인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우리의 뜻에 대해 이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소?"
"아직 모를 것입니다."
"그럼 어서 그들에게 가서 설명해 주시오."
"분부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황삼노인은 공손히 예를 취하며 이내 문 앞으로 걸어나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여러분들은 모두 알고 계시리라 믿소. 그리고 여러분이 이곳에 온 뜻에 대해서 우리도 분명하게 알고 있소."
그는 품속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께선 모두들 이와 똑같은 편지를 받고 이곳으로 왔을 것이오."
이어서 원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감히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또 말을 잘못할 것이 두려운 듯 그저 흐리멍텅하게 콧소리로 대답했다.
황삼노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여러분의 실력으로 이곳에 와서 다른 생각을 하기엔 아예 자격이 없소.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선 이곳에서의 일이 끝난 후에 다시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이렇게 말한 그는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는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해 드리겠소. 그저 여러분들께서 조용히 있기만 한다면 그 누구도 여러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는 부득이하지 않은 이상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누군가가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엣취....."
재채기를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수사 호미였다. 여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추위를 느낄 망정 옷을 입지 않는 버릇이 있다. 호미도 이런 버릇이 있었다.
그녀는 옷을 매우 적게 입은 데다가 골목 안의 바람이 또 심하고 맨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감기에 걸린 것이다. 재채기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바람에 머리에 얹혀 있던 동전이 떨어져 내려와 멀리 굴러갔다. 순간 호미의 안색이 급변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색도 변했다.
황삼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의 규칙을 모르고 있소?"
호미는 사색이 되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황삼노인은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알고 있으면서 어찌 그리 조심성이 없소?"
호미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후배는 절대 일부러 한 짓이 아닙니다. 선배님께선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그러나 규칙을 어길 수는 없소. 규칙이 파괴되면 위신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오. 당신도 강호에서 자랐으니 이런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 아니오!"
호미는 고개를 돌려 호비를 바라보면서 애걸했다.
"오빠 어떻게...얘기 좀 해 주세요....."
호비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는 얼굴에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며 암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얘기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호미는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처량하게 웃었다.
"알겠어요. 오빠를 탓하지는 않겠어요."
그러더니 다시 양승조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지요? 내가 곧 죽게 될 터인데 마지막으로 무슨 말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니에요?"
양승조는 꼼짝하지 못하고 앞만 바라볼 뿐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호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마지막으로 한번 보아 주지도 않겠다는 것인가요?"
양승조는 이번엔 아주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호미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호호...하하하....."
그녀는 양승조를 바라보면서 차갑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이 사람이 바로 저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저께 밤만 해도 이 사람은 나를 위하는 일이라면 죽음을 불사하겠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지금 그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녀의 두 눈에서 뜨지운 눈물이 흘러내려 왔다. 또한 웃음소리도 점점 낮아졌다.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혼잣말인 양 중얼거렸다.
"정이란 무엇이죠?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그런 것이 없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요. 모든 번뇌를 버리고....."
이렇게 말한 그녀는 갑자기 몸을 굴려 칠팔 자 밖으로 나가더니 두 손을 휘둘러 수십 점의 한성을 그려내며 황삼노인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몸을 날려 담을 넘으려고 하였다.
수사 호미는 암기술과 경공법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어 솜씨가 과연 비범했다. 그녀가 발해낸 암기는 많을 뿐만 아니라 신속하고 정확했다.
황삼노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은 또 무슨 망동인가?"
그의 말은 매우 느리고 온순했다. 하지만 동작은 육안으로는 거의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했다. 짧은 한마디를 하는 순간 수십 개의 한성이 모두 그의 소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담장 위로 뛰어 올라가던 호미는 갑자기 밑으로 떨어지면서 벽에 부딪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은 순간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었다.
황삼노인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본래 매우 편하게 죽을 수가 있었소. 그런데 이게 무슨 경거망동한 짓이오!"
호미는 가슴을 움켜잡은 채 쉬지 않고 기침을 터뜨렸다. 한데 기침을 할 때마다 붉은 선혈이 쏟아져나왔다.
황삼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당신의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겠으니 얘기해 보시오."
호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입을 열었다.
"그것도 규칙 중의 하나인가요?"
황삼노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소."
호미가 다시 물었다.
"내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다 들어줄 것인가요?"
"만약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가 대신 해줄 것이며 아직 끝내지 못한 원한이 있다면 우리가 대신 그 원한을 해결해 주겠소."
이렇게 말한 그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을 계속 이었다.
"우리 손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가 있소."
순간 호미의 두 눈에서 괴이한 광채가 폭사되어 나왔다.
"내가 꼭 죽어야 할 몸이라면 누구 한 사람을 지적해서 나를 죽이도록 해도 괜찮겠습니까?"
"안 될 것은 없소. 그런데 누구를 택할 것이오?"
호미는 이를 악문 채 한마디 한마디 분명하게 말했다.
"바로 저 사람, 양승조예요."
양승조의 안색이 급변했다.
"당신은...당신은 그게 무슨 뜻이오? 나를 해치자는 것이오?"
호미는 씁쓸히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비록 나에 대해서 위선적으로 대해 왔지만 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대했어요. 그저 당신의 손에 의해 죽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 거예요."
황삼노인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양승조에게 말했다.
"살인하는 것은 손을 들었다 놓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친구는 한 번도 살인을 해본 적이 없소?"
이렇게 물은 황삼노인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한 황삼노인이 허리에서 칼을 뽑아 양승조에게 건네주면서 살며시 웃었다.
"이 칼은 매우 예리하오. 한 번이면 한 사람 죽이기엔 충분할 것이오."
양승조는 절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때 그가 고개를 젓는 바람에 그의 머리 위에 있던 동전이 흔들려 떨어져 내려오고 말았다. 양승조의 안색이 금방 흙빛으로 변해 이마에서 식은땀을 비오듯 흘렸다. 그러자 호미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전에 만약 내가 죽으면 당신도 같이 죽겠다고 말했지요. 당신은 과연 신용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군요. 호호호."
양승조는 전신을 떨기 시작하더니 미친 듯이 소리쳤다.
"네 이 마녀, 악랄하기 그지없구나!"
그러더니 황삼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호미의 목을 내리쳤다. 순간 목이 떨어져 나가면서 붉은 핏기둥이 치솟아 양승조의 전신을 붉게 물들였다. 양승조는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일순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 어느새 어두컴컴한 주위에는 뿌연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양승조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손을 들어 이번엔 자신의 목을 후려쳤다. 다시 핏기둥이 치솟아오르면서 그의 몸은 호미의 시체 위에 떨어졌다.
손꼽추는 그제야 이 사람들이 어째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만약 누구든지 동전을 떨어뜨리는 날엔 영락없이 죽게 되기 때문이다. 손꼽추는 이 황삼인들이 너무 무섭고 또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청면 사나이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태연자약하게 술만 마셨다. 손꼽추는 청면 사나이를 바라보면서 황삼인들이 어째서 이 사람의 머리에다가는 동전을 올려놓지 않은 것인지 의아해 하였다.
바로 이때, 외다리 괴인이 갑자기 일어나 천천히 청면 사나이의 자리로 가 맞은편에 앉았다. 청면 사나이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외다리 괴인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면서 피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꼽추는 절로 긴장해 있었다. 그는 이 두 사람의 눈이 모두 예리한 칼과 같으며 당장이라도 상대방의 심장을 꿰뚫을 것만 같이 여겨졌다.
안개는 갈수록 짙어만 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외다리 괴인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웃음은 매우 독특하고도 이상했다. 그가 일단 웃음을 띠게 되면 그의 흉악함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친절하게 보였다.
외다리 괴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귀하께서 누구신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소."
청면 사나이는 정색을 하며 말을 받았다.
"아! 그래요?"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귀하께서도 아시고 있으리라 믿소."
"요 근래에 와서 당신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매우 드물 것이오."
외다리 괴인은 가볍게 웃으면서 품속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냈다. 이 편지는 황삼노인이 꺼낸 편지와 똑같았는데 겉보기엔 보통 편지와 같고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손꼽추까지도 호기심에 그 편지 위에 무엇이 쓰여져 있는지 보고 싶었다. 댕기 처녀도 두 눈이 휘둥그래진 채 몰래 편지를 훔쳐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다리 괴인이 그 편지를 상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누르고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외다리 괴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귀하께서 천리 먼 길을 불사하고 이곳에 온 것은 이 편지 때문임에 틀림없으시겠지요?"
"그렇습니다."
"귀하께선 이 편지를 누가 썼는지 알고 있소?"
"모르오."
"우리가 알기로는 강호 중에 이와 똑같은 편지를 받은 사람은 최소한 백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하오. 하지만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라는 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소. 우리도 사방으로 조사해 보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를 못했소."
청면 사나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당신들이 알아내지 못했다면 또 누가 알아낼 수가 있겠소?"
외다리 괴인 또한 웃으면서 대꾸했다.
"우린 비록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그 속셈은 알 수가 있소."
청면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그 속셈이란 무엇이오?"
"그가 강호에서 명성을 지닌 모든 호걸들을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은 바로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쟁탈케 하며, 서로를 살생케 하라는 것이며, 그는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것이오."
"그렇다면 당신들은 또 어째서 이곳에 온 것이오?"
"바로 그 자의 속셈이 너무나 흉악하여 우리는 이렇게 와야 했던 것이오."
이렇게 말한 외다리 괴인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계속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여러분들이 그 자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타이르기 위한 것이오. 여러분들이 만약 손을 뗀다면 이번 화는 무언중에 사라지게 될 것이오."
청면 사나이는 냉랭하게 웃었다.
"당신들의 마음 씀씀이가 괜찮구려."
외다리 괴인은 그의 말 속에 가시가 돋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역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그저 큰일을 될 수 있는 한 작게 와해시켜 버리고 싶을 뿐이며 작은 일을 무형으로 와해시킬 생각이오. 그래야 모두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소?"
청면 사나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설사 내가 손을 대지 않는다 해도 당신들의 차지는 되지 않을 것이오."
외다리 괴인도 마주 큰소리쳤다.
"귀하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고하를 가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오."
이렇게 말한 그는 수중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가 힘껏 밑으로 찍었다. 순간 불꽃이 사방으로 튀면서 네 자 길이의 쇠지팡이가 땅 속으로 석 자나 파묻혔다.
그러더니 괴인은 싸늘하게 소리쳤다.
"귀하의 사편이 백요생의 병기보에 일곱 번째로 나열되어 있다는것을 이미 알고 있었소. 내 오늘 한번 견식해 보고 싶소."
청면 사나이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이곳에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소?"
외다리 괴인은 손을 비비면서 대답했다.
"그렇소.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이러한 일로 인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너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온 이상 어떻게 된 일인지 최소한 진상은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소."
외다리 괴인의 얼굴이 돌연 차갑게 변했다.
"그렇다면 귀하께선 손을 떼지 않겠다는 것이오?"
청면 사나이는 싸늘한 어조로 대꾸했다.
"나도 마침 당신들에게 견식을 시켜주려던 참이었소."
이렇게 대꾸한 청면 사나이는 왼손으로 상을 가볍게 누르며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순간 예리한 파공음이 들리면서 그의 오른손엔 새까맣고 긴 채찍이 하나 들려졌다.
연한 병기는 길면 길수록 사용하기가 어렵다. 일곱 자 길이의 채찍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류고수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청면 사나이의 수중에 들려 있는 긴 채찍은 상상할 수조차 없이 길었다. 설사 삼 장이 되지는 않는다 해도 이 장 대여섯 자는 능히 되었다.
그가 오른손을 가볍게 내휘두르자 그 긴 채찍은 날카로운 파공음을 발하면서 원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향해 감아갔다.
순간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면서 사십여 개의 동전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려왔다. 원 안에 들어가 서 있는 사십여 명의 사람들은 키가 유난히 큰 사람도 있었고 또 반면에 키가 유별나게 작은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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