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9일 화요일
36 소이비도 제3권 뜻밖의 도움 그리고 죽음의 의미
뜻밖의 도움 그리고 죽음의 의미
초류빈을 안은 여인의 나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많아야 스물 대여섯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고 생김새도 그다지 미운 편은 아니었다. 백옥같이 흰 피부에 두 눈은 왕방울만했고 입은 방금 따온 앵두처럼 붉고 탐스러웠다. 그리고 웃는 얼굴에는 보조개까지 패이는 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얼굴 윤곽을 빼놓고 그 외의 것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여인의 턱은 세 겹이나 비곗살로 주름이 졌고 몸은 살찐 암퇘지보다 더욱 비대했다. 이런 여인의 품에 안긴 초류빈은 마치 푹신한 솜이불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초류빈은 그렇게 음성이 부드럽고 또 웃음소리가 방울이 짤랑거리는 것 같은 여인이 이처럼 비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초류빈은 여태까지 각양각색의 여인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비대한 여인은 보다 생전 처음이었다.
일개의 남자가 이런 여인의 품에 안긴다면 차라리 접시물에 빠져 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초류빈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또 한 명의 여자를 본 순간이었다. 그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리고 몸집 또한 날씬했고 물찬 제비와도 같았다. 그 날씬한 몸에 온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남색 옷을 온몸에 꽉 달라붙도록 입고 있었는데 또 옷소매는 바람에 타는 듯 매우 넓었다.
그녀의 이런 자태는 마치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것과 같았다. 이 여인은 바로 다름 아닌 초류빈에 의해 손이 하나 부러진 남갈자였다. 초류빈은 절로 기나긴 탄식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갈자는 초류빈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 아무런 표정도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초류빈을 안고 있는 비대한 여인은 웃을 때엔 온몸이 지진을 만난 듯 흔들거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초류빈도 마치 커다란 지진을 겪고 있는 듯했다.
설영령은 약간 당황해 하며 크게 소리쳤다.
"그 사람은 몹시 더러워요. 몇 달 동안 목욕도 하지 않았으니 어서 그를 내려놓으세요. 그의 몸엔 이가 들끓고 있을 뿐 아니라 빈대도 우글거리고 있어요."
비대한 여인은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더럽다고? 어째서 더럽다는 거냐? 설사 그의 몸에 빈대가 있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다. 남자의 몸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라면 그 남자의 체취가 묻어 있을 게 분명하니까."
이렇게 말한 그녀는 간드러지게 웃어젖히더니 다시 말했다.
"호호호호...그저 남자의 냄새가 나는 것이라면 나는 무엇이나 다 좋아하니까."
설영령의 표정은 정말 보기 딱할 만큼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러나...그는 술주정뱅이일 뿐만 아니라 더럽기가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사내예요."
비대한 여인은 계속 그녀의 말을 받아넘겼다.
"술주정뱅이라고? 주량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내대장부다운 기질이 있다."
이렇게 말한 그녀는 초류빈의 얼굴을 한 번 쓰다듬더니 다시 말했다.
"당신이 만약 술을 좋아하신다면 내 기꺼이 그 시중을 들겠어요. 어떠한 일들은 술을 마신 후 더 흥미가 있을 테니까 말이에요."
설영령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 아래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평소에는 매우 담담하고 무게가 있으나 여자를 보면 갑자기 가벼워지는 남자들을 색귀라고 하죠. 그러나 그런 여자들더러는 어떻게 칭해야 하나요?"
비대한 여자는 설영령의 그 말을 듣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턱의 주름살을 흔들며 웃어젖혔다.
"호호호호...그런 여자도 바로 색귀다. 내가 바로 그런 여색귀다. 나는 남자만 보면 사족을 못쓴다. 알겠느냐?"
설영령은 싸늘하게 비웃었다.
"그럼 남자들이 과연 당신을 좋아할까요?"
"오냐. 내 비록 살이 찌기는 했지만 여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남자들은 뚱뚱한 여자들이 겨울엔 따스하고 부드러우며 여름엔 시원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비대한 여인은 초류빈을 내려다보며 만족한 듯 웃고 나서 다시 말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이 사람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순간 설영령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웃는 것이 마치 금방 미쳐 버린 것 같았다.
비대한 여인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어째서 웃는 거냐?"
설영령은 그래도 웃음을 그치지 못하고 겨우 대꾸했다.
"당신의 몸이 너무 크고 또 미련스러운 것에 대해 웃고 있는 거예요."
미련한 여인은 그녀를 쏘아보았다.
"내가 어째서 미련하다는 거냐?"
설영령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초류빈을 가리켰다.
"당신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
그러자 비대한 여인은 오히려 반문해 물었다.
"그렇다면 넌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설영령의 표정은 이 순간 매우 어른스러웠다.
"당신은 설마 저 사람의 사촌동생은 아니겠죠?"
비대한 여인은 조금도 막히는 데 없이 대답했다.
"너는 대환희여보살(大歡喜女菩薩)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겠지? 내가 바로 여보살좌하의 지존보다. 나는 남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잡아먹는다."
설영령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대들었다.
"하지만 저 사람을 잡아먹을 땐 조심해야 할 거예요. 목에 걸리기 십중팔구일 테니까."
지존보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날렸다.
"나는 유수한 남자들을 다 먹어 왔지만 여태까지 목에 걸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말한 그녀는 싸늘한 눈초리로 설영령을 노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것 봐, 꼬마 아가씨. 내 좋은 말로 전하겠는데 일찌감치 입 다물고 있는 게 좋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눈도 감고 있는 게 좋겠군."
그러나 설영령은 더욱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그러나 최소한 당신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게 아닌가요?"
지존보는 냉랭한 음성으로 쏘아붙였다.
"내가 알고 싶으면 직접 물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나는 이 자의 이름을 알기 전에 남자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족하다."
지존보는 더 이상 말하기 싫은 듯 남갈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 부탁하겠는데 이 애를 좀 끌어내 가다오. 우선 이곳에서 몸 좀 풀어야겠으니. 그러나 절대 훔쳐보아선 안 된다."
순간 초류빈은 전신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심한 구토를 느꼈다. 혈도가 찍혀 꼼짝달싹할 수도 없는 몸이라 초류빈은 남갈자가 자신에게 복수하는 셈치고 단번에 자신을 죽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갈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내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듯 본체만체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다는 말인가. 이렇게 잠시 동안 초류빈의 숨통을 조이는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남갈자가 갑자기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저 남자는 나도 필요해요."
순간 지존보의 안색이 싹 변했다.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남갈자는 아무 표정없는 얼굴로 한마디 한마디 분명하게 말을 했다.
"나도 저 남자가 필요해요."
갑자기 지존보의 두 눈에서 공포스러운 흉광이 무섭게 폭사되어 나왔다.
"네가 감히 나의 남자를 빼앗으려는 거냐?"
남갈자는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지존보를 냉랭하게 노려보았다.
"꼭 빼앗아야만 되겠어요."
일순 지존보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수없이 그 변화를 반복하더니 갑자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오냐. 네가 만약 꼭 이 남자를 갖고 싶다면 우리 자매끼리 충분히 상의할 여지가 있는 일이 아니냐?"
남갈자는 표독스럽게 그의 말을 잘랐다.
"나는 그의 몸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의 목숨이 필요해요."
지존보는 그제야 안심한 듯 음탕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잘 되었구나. 내가 이 남자와 한바탕 즐긴 후 죽여도 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남갈자는 양보할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저 자를 죽이고 난 후 재미를 봐도 되지 않나요?"
지존보의 두 눈에 노기가 가득 떠올랐으나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내 비록 남자를 매우 좋아하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에겐 흥미가 없다."
남갈자는 이제야 두 눈을 크게 뜨고 초류빈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지금 저 자는 죽어 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죠?"
지존보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 자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혈도가 찍혀 있기 때문이다. 내겐 저 자를 움직이게 할 방법이 있다."
남갈자는 정색을 하며 냉랭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저 자가 움직이게 되면 나는 저 자의 목숨을 가질 수가 없어요."
이때 설영령이 끼여들더니 냉랭하게 소리쳤다.
"맞아요. 만약 그가 움직이게 되면 당신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거예요."
지존보는 그녀를 쏘아보며 노기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렇다면 이 자가 도대체 누구라는 말인가?"
설영령은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매섭게 내뱉었다.
"바로 그 유명한 비도탈명 초류빈이에요."
순간 지존보는 그만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간, 그녀는 이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떼었다.
"나...난 믿을 수 없어. 만약 이 자가 진짜 초류빈이라면 어째서 너 같은 어린 것에게 반했겠느냐?"
설영령은 초롱초롱한 눈을 크게 뜨고 대꾸했다.
"그가 나에게 반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반한 거예요. 그래서 난 당신들이 빨리 그를 죽이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지존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쳐 물었다.
"너 그게 무슨 소리냐?"
설영령의 표정은 몹시 야멸찼다.
"저희 아씨께선 제게 말씀하셨어요. 만약 한 남자에게 반해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그를 정복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다른 여자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죽이라고 했어요."
지존보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길게 탄식을 터뜨렸다.
"난 네가 그처럼 악랄한 줄은 미처 몰랐다."
설영령은 쉬지 않고 핍박해 들었다.
"당신은 그래도 저 남자가 필요해요? 당신에게 그만한 담량이 있나요?"
지존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말했다.
"여자에게 파묻혀 죽는다면 지옥에 가서도 풍류객(風流客)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이 초류빈 같은 남자와 하룻밤의 정을 쌓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남갈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침을 삼키며 계속해서 말했다.
"너도 너무 조급해 하지 마라. 내가 이 사람과 재미를 보고 난 후에 너에게 죽일 기회를 줄 것이다."
남갈자는 그를 냉랭하게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존보는 다시 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너를 돕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러니 너도 최소한 내 체면은 세워줘야 할 게 아니냐?"
남갈자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말했다.
"남자의 손이 끊어져 있어도 흥미가 있다는 말이군."
지존보는 이미 육욕에 눈이 뒤집혀 있었다.
"두 손이 부러졌다 해도 상관없다. 단지 다른 곳만 부러지지 않았으면 되는 것이다."
남갈자는 매정하게 소리쳤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그의 손을 끊어 놓겠어요."
지존보는 무엇이라 반박을 하려다가 그녀의 싸늘한 표정을 보자 이내 입을 다물고는 잠시 후에 말을 꺼냈다.
"좋다. 그럼 오른손이 필요하냐? 왼손이 필요하냐?"
남갈자는 이제야 초류빈의 존재를 의식한 듯 얼굴에 살기를 가득 떠올리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가 나의 오른손을 잘라 놓았으니 나 역시 오른손을 끊어야 합당한 일이죠."
지존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의 오른손을 잘라라.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피를 많이 흘리지 않아야 한다. 흥이 깨지니까 말이다. 그저 너의 그 갈자 꼬리로 한 번 긋기만 하면 되겠지."
남갈자는 순순히 응했다.
"그렇게 하죠."
남갈자는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때 설영령이 새파랗게 안색이 변해 소리쳤다.
"정말 당신들은 그를....."
설영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존보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달랬다.
"어린 아가씨, 너무 가슴 아파하지는 마시게."
이 순간 남갈자의 손에서 이미 파란 광채가 폭사되어 나오고 있었다.
"으악!"
동시에 처절한 비명이 온 방 안에 울렸다. 이어 초류빈의 몸은 방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그런데 그 비명은 초류빈의 입에서가 아니라 지존보의 입에서 터져나온 것이라는 것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비명소리가 터지는 동시에 초류빈은 방바닥에 굴러 떨어지고 지존보는 남갈자를 향해 미친 듯 덮쳐갔다. 그러나 남갈자는 가냘픈 허리를 돌리더니 옆으로 일곱 자나 피해 갔다. 지존보의 몸도 비록 비대하기는 했지만 그 동작은 마치 물찬 제비와 같이 경쾌하고 신속했다.
지존보는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남갈자의 손을 재빠르게 낚아챘다. 순간 남갈자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나 반대로 지존보의 안색은 검푸르게 변했고 가뜩이나 큰 두 눈이 앞으로 툭 튀어나온 게 그처럼 공포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존보는 남갈자의 손을 낚아챈 후 이를 갈아붙였다.
"네 이년, 네가 감히 내게 암산을 전개하려고 하다니 내 먼저 너를 죽여 주마!"
지존보의 이 말이 끝나는 동시 헝겊이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남갈자의 손은 소매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이때 남갈자는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났는데 그녀의 표정에는 고통의 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존보가 잘라낸 것은 바로 남갈자의 오른손이었다.
그때 남갈자가 요사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호...지금 너의 손에 잡혀 있는 게 무엇인지 한번 보아라."
지존보가 움찔하여 오른손을 들어 보니 반쯤 찢어져 나온 소매 안에는 푸른 광채가 번뜩이는 갈자 꼬리가 들어 있었다. 이제 보니 남갈자는 초류빈에게 오른손이 잘린 후 자신의 병기를 잘라 그 상처 부위에다 붙이고 넓은 소매로 감쪽같이 감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남갈자는 계속 냉랭하게 말했다.
"내 갈자 꼬리에 묻은 독에 중독이 되면 일곱 걸음도 못 가 즉사를 하고 만다. 그러나 너 같은 인간은 세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이년, 어디 두고 보자!"
지존보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육중한 몸을 놀려 미친 듯 다시 덮쳤다. 그러나 남갈자의 말대로 지존보는 세 걸음도 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남갈자는 더 이상 지존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초류빈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남갈자는 고개를 숙이고 싸늘한 눈초리로 한참 그를 노려보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곡은 설소하를 찾아갔기 때문에 죽은 것이에요. 그리고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설소하와 결판을 내기 위한 것이지 당신과 어떤 상관이 있어 온 건 아니에요."
그때 설영령이 끼여들면서 말했다.
"당신은 그와 얘기를 하면서 어째서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해 혈도를 풀어 주지 않는 거죠?"
그러나 남갈자는 그녀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비록 내 손을 하나 잘라 놓았지만 내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어요. 이것으로 내겐 당신에 대한 약간의 은혜가 있는 것이에요. 나는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은원을 가장 분명하게 가렸어요.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조그만 은혜를 입었던 까닭에 당신이 저런 여자에게 능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어요."
초류빈은 속으로 길게 탄식을 터뜨렸다. 그는 남갈자가 이런 여자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남갈자는 초류빈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어조를 싹 바꾸었다.
"지금 나는 당신에게 진 빚을 갚았어요. 그러니 당신도 내게 빚진 것을 꼭 갚아야 해요. 대가로 지금 나는 당신에게서 오른손 하나를 끊어 가겠어요. 당신은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지 마세요."
이때 초류빈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리더니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순간 남갈자는 그만 그 자리에서 넋을 잃었고 설영령 역시 안색이 크게 변했다.
초류빈은 비록 오른손을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으나 자신의 비도탈명은 발하지 않았다.
남갈자는 초류빈의 손을 내려다보며 일시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설영령은 정신을 잃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 당신의 손이 어떻게 해서 갑자기 움직이게 되었죠?"
초류빈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아까부터 운기를 해서 혈도를 풀었지만 공력이 부족해 마지막 일관을 뚫지 못했소. 그런데 방금 지존보의 품에서 떨어지는 순간 마지막 일관이 뚫린 거요. 말하자면 그녀가 나를 도운 것이지."
설영령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그에게 다그쳤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남이 요구하는 대로 손을 순순히 내미는 거죠?"
초류빈은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남갈자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남낭자, 당신의 그 요구는 절대 과분한 것이 아니오. 나는 결코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오. 자, 그러니 어서 내 오른손을 끊으시오."
남갈자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장탄식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세상에...세상에 과연 이러한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이런 사람이 과연 있다는 말인가?"
남갈자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홱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때 초류빈이 뛰어 일어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기다리시오!"
남갈자는 안색이 핼쓱하게 변해 씁쓸히 웃었다.
"제게 뭘 더 기다리라는 거예요? 당신은 아까 손을 내민 순간 제게 이미 빚진 것을 갚은 거예요. 내 비록 여자의 몸이긴 하나 도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어요."
설영령은 두 눈을 깜박거리며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가 사이에 끼여들었다.
"여자란 본래 도의를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에요. 그것은 또 여자의 권리이기도 하죠. 남자들은 천부적으로 여자보다 강하니까어느 정도 여자에게 양보를 해야 해요."
남갈자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누가 한 말이냐?"
"물론 저희 아씨께서 하신 말이죠."
남갈자는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떠올렸다.
"너는 그녀의 말을 퍽 잘 듣는 모양이구나."
설영령은 천진스럽게 대꾸했다.
"아씨는 우리 여자들을 위해 한 말이에요. 때문에 여자라면 모두 그 말을 들어야 해요."
남갈자는 갑자기 설영령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손을 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뺨을 십여 차례나 갈겼다.
설영령은 뺨을 다 맞고도 아픔을 느끼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남갈자는 그녀를 무섭게 쏘아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나도 너희들처럼 결코 좋은 여자는 못된다. 그런데 넌 내가 무엇 때문에 너를 때렸는지 그 이유나 알고 있느냐?"
설영령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것은 당신이...당신이....."
그러나 미처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그녀는 얼굴을 감싼 채 울음을 터뜨렸다.
남갈자는 다시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것은 바로 너희들과 같은 여자들이 있는 까닭에 남자들이 우리 여자들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여자를 업신여기는 까닭에 나는 그에 대한 복수를 하기로 했다. 때문에 이런 짓을 하게 된 것이다. 알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남갈자의 음성이 점점 낮아지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흐느낌으로 변했다. 남갈자는 잠시 격동된 마음을 가라앉힌 후 다시 이었다.
"나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이미 마음속으로는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행위는 비단 남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해친다는 것을...내 일생은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 의해 망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초류빈은 온후한 음성으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과거는 역시 과거로 끝나야 하는 거요. 낭자는 아직 젊으니까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소."
남갈자는 길게 탄식했다.
"물론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자기의 양심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다면 남들의 시선과 생각은 전혀 도외시할 수도 있는 거요. 우리 인간이란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지 남을 위해 사는 건 아니지 않소?"
이때 남갈자는 고개를 들어 초류빈을 쳐다보더니 한마디 한마디 분명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완전히 당신 자신 하나만을 위해 사는 것인가요?"
"아...나...난....."
초류빈이 그녀의 이 물음에 일시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자 남갈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을 얻게 되는 사람은 평생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다만 내가 십 년 전에 처음 당신을 만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에요."
남갈자는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밖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지존보의 시체는 제가 치울 테니까 상관하지 마세요. 저는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해선 꼭 끝을 맺는 게 습성이니까요."
이 음성을 마지막으로 남갈자의 말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설영령은 아직도 두 손으로 뺨을 감싼 채 흐느끼고 있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어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흥, 분명히 제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남을 원망하고 또 제 자신이 나쁜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웅인 척하는 그런 인간에 대해선 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요."
"그러나 그녀는 영령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녀가 한 짓에 대해 제가 모르고 있는 줄 아세요?"
"그녀가 어떤 일을 했든 본성이 착한 것만은 틀림없다. 한 인간으로서 본성이 착하다면 어떤 일을 해도 구제받을 수 있다."
"당신은 저의 본성이 매우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구제할 길이 없다고요."
"영령은 아직 어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잘 모르고 있구나. 그저 누군가가 널 잘 가르쳐 주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구제할 수가 있다."
"당신이 절 가르쳐 주시겠어요?"
"글쎄, 기회가 있다면 훗날....."
"훗날이라고요? 지금은 안 되나요....."
"영령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기필코 곽숭양을 찾으러 가야 한다.그러나 만약 내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당신은 이번에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당신 같은 대인들이 어떻게 나 같은 계집아이 때문에 돌아오겠어요?"
설영령은 눈자위를 비비면서 계속 퍼부었다.
"그리고 난 당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때문에 제가 장차 잘 되든 잘못 되든 당신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거예요. 그뿐 아니라 제가 장차 남갈자보다 더 타락한 여자가 된다 해도 그것은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설사 제가 누구에 의해 길가에서 살해되었다고 해도 당신은 제 시체조차 거들떠보지 않을 거예요."
설영령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그녀의 말은 마치 장차 자기가 타락되는 것은 초류빈 때문이라고 탓하는 것 같았다.
초류빈은 말할 수 없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는 꼭 돌아온다 "
설영령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몸부림쳤다.
"당신처럼 바쁜 사람이 제가 생각나 돌아올 때는 저는 이미 추한 노파가 되어 있을 거예요. 아니 어쩌면 죽어 있을지도 몰라요."
초류빈은 매우 당황해 하며 그녀를 달랬다.
"영령, 나는 꼭 돌아온다. 멀지 않아 기필코....."
그러자 설영령은 울음을 그치고 다그쳤다.
"정말이세요? 그렇다면 언제 돌아올 것인지 얘기해 주세요. 저는 꼭 기다리겠어요."
초류빈은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필코 죽지 않는다. 그리고 곽숭양을 만나면 즉시 돌아올것이다."
설영령은 기뻐서 비명을 지르며 초류빈의 목을 껴안았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군요. 당신을 위해서라도 저는 기필코 좋은 사람이 되겠어요. 하지만 절대 죽어선 안 돼요. 그렇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될 거예요."
원래 초류빈은 마음의 부담이 많은 사람이다. 한데 지금은 그전보다 더욱 무거워졌다. 이제 설영령이 잘되고 못되고는 초류빈의 책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초류빈은 그저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초류빈은 이 어린 소녀를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초류빈에게는 이 어린 소녀로 인해 번뇌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단지 지금 그의 마음에는 단 한 가지의 일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초류빈은 곽숭양이 아직 형무명이나 상관금홍을 만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동시에 자신이 달려갔을 때 늦지 않기를 희망했다.
그렇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늦지는 않았다. 어느덧 짧은 가을 태양은 서산 마루턱에 걸려 있었고 산길을 돌아 흐르는 샘물이 태양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샘물 위에 우수수 단풍잎이 떨어져 내렸다.
태양빛에 비추어 원래 황금색을 띠고 있던 샘물은 단풍잎으로 인해 핏빛으로 변했다.
가을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이처럼 많은 단풍잎이 떨어진 것일까. 혹시 이 단풍잎들은 형무명과 곽숭양의 검기에 의해 떨어진 것은 아닐까. 수북이 쌓인 나뭇잎을 보는 초류빈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침중했다.
초류빈은 이것으로 인해 두 가지 일을 생각해 낸 것이다. 곽숭양과 형무명, 그리고 상관금홍의 결투가 이미 시작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곽숭양은 악전고투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간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때문에 진통을 이기지 못한 단풍잎이 이처럼 무수히 떨어져 내렸을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곽숭양이 최소한 많은 시간을 버티었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버티어 낼 수 있을까.
초류빈은 지금 자기에게 날개가 달렸다면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었지만 인간인 그로서는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풍잎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길목마다 피를 쏟은 듯 붉게 변해 있었다. 온 산의 붉은 단풍잎의 십중팔구가 검기에 의해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땅에 떨어진 단풍잎들은 가을바람에 날려 온통 붉게 변해 있어 마치 시뻘건 비단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사방은 고요했고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날리는 것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악전이 이미 끝났다는 것일까.
악전이 끝났다면 과연 누가 승리를 한 것일까. 숲 속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스쳐가는 것은 오직 싸늘한 바람뿐이었다. 그러니 가을바람이 설사 말을 할 줄 안다고 해도 초류빈이 알고자 하는 소식을 전해 줄 수는 없었다.
다만 시냇물만이 패배자를 위해 조의를 표하는 듯 흐느끼며 소리내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고요, 침묵. 그것은 실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곽숭양이 이미 전사를 했다면 그의 시체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다시 가슴에 격동이 치민다. 초류빈은 샘물 옆에 서서 허리를 구부린 채 괴롭게 기침을 계속했다. 서서히 싸늘한 냉기가 엄습해 들며 가을 태양이 드디어 서산 너머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정적과 함께 찾아오는 어둠, 그것은 또 하나의 공포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때 문득 초류빈은 샘물이 단풍잎의 영향을 받아 붉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붉은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혹 패배자가 흘린 피가 아닐까.
초류빈은 급히 걸음을 옮겨 샘물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샘물의 끝에는 거대한 폭포가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폭포의 높이는 거의 백여 장에 달했는데 놀랍게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은 지상에서 약 이삼십 장 떨어진 곳에 걸려 있었다. 폭포가 쏟아져 내려오는 힘이 바로 이곳에서 가장 강한 곳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그 거대한 폭포수를 맞으면서 조금도 밀리지 않고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거센 물살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 허연 맨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도 그 사람은 그 자리에 걸린 채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초류빈은 아연실색해 크게 소리쳤다.
"곽숭양! 곽형....."
미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폭포로 달려 들어가 곽숭양의 시체를 끌어냈다. 곽숭양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전신 또한 싸늘했고 마치 석회로 만든 것처럼 딱딱했다. 하지만 곽숭양은 손에 검집을 꼭 쥐고 숨이 끊어진 후에도 놓지 않고 있었다.
곽숭양이라는 이름을 떨치게 만든 그의 무기 숭양철검은 폭포 뒤에 있는 암석에 깊이 박혀 있었다. 짐작해 보건대 곽숭양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 마지막 힘을 다해 그 검을 암석에다 꽂은 후 자신을 그 위에다 걸어 놓은 것 같았다.
곽숭양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단 말인가. 초류빈이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시체를 끌어내려 샘물 옆에 있는 바위 위에다 눕혔을 때 등뒤에서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일까요?"
초류빈은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이 음성이 설영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영령은 초류빈을 이 세상 끝까지라도 따라갈 결심을 하고 뒤따라 온 것이다.
설영령은 계속해서 감정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자신을 그 위에다 걸어 놓은 것일까요? 혹 당신이 그를 찾지 못할까 봐 그런 것은 아닐까요? 만약 이것도 아니라면 죽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함이었을까요?"
초류빈은 장탄식을 하며 겨우 말을 꺼냈다.
"인간이란 본질이 깨끗하면 깨끗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 외에도 또다른 뜻이 있다."
설영령은 다그쳐 물었다.
"그 외에 무슨 뜻이 있다는 거죠?"
초류빈은 유유한 폭포를 쳐다보면서 무겁게 대꾸했다.
"그는 남이 자기의 시체를 매장해 주거나 또 가져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설영령은 바싹 등뒤로 다가왔다.
"그건 무엇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는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렸다는 말인가요?"
초류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는 바로 나를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당신을 기다린 거죠?"
초류빈은 고개를 높이 쳐들더니 한마디 한마디 분명하게 뱉어냈다.
"그것은 바로 내게 전해 줄 말이 있기 때문이다."
설영령은 그만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떠서 초류빈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그녀가 의문이 가득 담긴 어조로 물어왔다.
"그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었다고요?"
초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설영령의 표정은 여전히 의혹에 가득차 있었다.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이미 아셨다는 건가요?"
"그렇다. 나는 이미 알았다."
곽숭양이 이미 당신에게 말해 주었다는 것인가요?"
초류빈은 그 어떤 발견을 한 뒤의 표정처럼 매우 비장해졌다.
"그렇다."
설영령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당신이 이곳에 왔을 때 그는 이미 죽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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